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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pr 13. 2021

샤넬과 예쁜꼬마선충

프랑스의 고즈늑한 시골 수녀원에 한 여인이 찾아온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거액을 기부하고 홀연히 사라진 그 여인은 코코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1883~1971)이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명품 브랜드의 설립자이자 화려한 삶을 살다간 '상류사교계의 꽃 ' 샤넬의 일생이 그러했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불우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12살이던 그녀는 장돌뱅이였던 양부의 손에 이끌려 수녀원에 맡겨진다. 이후 수녀원에서 익힌 바느질은 그녀의 남은 생을 통째 바꾸게 된다.
무엇보다  20세기의 패션을 이끈 그녀의 스타일은 이 수녀원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샤넬의 로고는 수녀원의 스테인드그라스에서, 흑백의 장식없는 복식은 수녀복에서, 다양한 문양의 바닥의 조약돌 패턴, 심지어 향수병은 종각에서 착상한 것이었다.
1928년 자신이 직접 디자인부터 장식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 유일한 집이자 별장인 라 파우자(LA PAUSA)는 유년 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도원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가장 잊고 싶었던 기억이고 비참했던 시절, 함께 맡겨진 여동생마저 죽고 무료원생으로 차별받던 수도원 생활이 그녀를 세계적인 명사로 탈바꿈시킨 토대가 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비교적 잘 알려진 샤넬이란 인물과 일생을 더듬어보는 건 의미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와 별다를 게 없다는 걸 발견하기 때문이다.
불우한 유년시절이 그녀의 일생을 지배했다. 뭇 남성들에게 둘러쌓여 있었지만 진정한 연인은 없었다.
여성에게서 코르셋을 벗게 했다지만 실은 다른 사람이 먼저였다. 그녀의 부를 가져다 준 것은 옷이 아니라 동업자가 만든 향수였다.
유태인 후원자를 배신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후원자의 손에 회사를 넘겨줬다. 전범으로서 처벌을 면했지만 결국 고국 프랑스에 묻히지 못했다.
평탄하든 굴곡졌든 한 사람의 일생은 겉과 속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보이는 모습과 실상에는 간극이 늘 존재한다. 운명과 선택, 오해와 실수가 실타래처럼 꼬여 인생을 잣는다. 우리네 삶도, 우리의 모습도 그러하다.

길이가 1mm도 안되는 예쁜꼬마선충이란 동물이 있다. 기생충을 닮았다. 이 종이 생물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생물학 중 유전공학이나 해부학, 신경과학 쪽에서 특히 많이 연구하는 생물이다.
신경세포가 302개밖에 없어 현재 인류가 가장 완벽하게 알아낸 동물이기도 하다. 존 화이트란 과학자가 뉴런과 시냅스를 맵핑하기 위해 선충을 8000등분 한 뒤, 단면을 하나하나 다 살펴가며 손으로 신경망을 전부 그려냈다.
이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의 연구에 쓰이는 생물이 초파리다. 그런데 초파리는 아직까지 다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신경세포가 몇천억개나 되는 인간의 연구는 요원하다.
매우 단순한 생명체인 예쁜꼬마선충임에도  아직까지도 학계에서는 시냅스의 연결 강도가 언제 어떤 곳이 강해지고 약해지는지 밝혀내지 못했다니 더 말할 나위 없다.

나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크기의 예쁜꼬마선충을 8000등분한 슬라이스를 관찰해 신경망 지도를 그린 노력에 감탄하고 그럼에도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작은 생물체는 술에도 취하고 무리를 이루기도 하며 심지어 춤도 춘다고 했다. 과연 인간은 몇 등분해야 알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 틀림없다.
심지어 사후에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우리는 짧은 생에 조급함이 몸에 배여서인지 순간순간 포착된 장면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기 일쑤다. 보고싶은 면만 보고 믿고싶은 사실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사유해야 그나마 오류와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직 불가사의한 영역에 속한다. 302개의 신경세포만을 가진 예쁜꼬마선충도 2~3주를 사는 동안  희로애락을 느끼고 생노병사를 겪다 죽는다. 하물며 신경세포만해도 수천억개에 달하는 인간이다. 거기에 감정, 느낌까지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존재다. 8000등분할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하더라도 잘라낸 슬라이스 하나만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유레카를 외치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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