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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pr 13. 2021

비는 오고 심사는 뒤틀리고

잘만든 드라마이기도 하고 유독 여운이 남는 대사가 많았던 <나의 아저씨>에 이런 대사가 있다.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사람 되기 쉬워.."

봉준호의 <기생충>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오는데 좀더 직설적이다
"부자들이 원래 착해. 고생을 안해서 애들도 꼬인데가 없고, 부잔데 착하다니까."
"부잔데 착한게 어딨어. 부자니까 착한거지...."

서로의 이념과 지향이 다른 두 그룹 사이를 오가며 옳은(맞는듯한) 말만 하고 공명정대한 판관 흉내를 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런 대사를 쓰고싶다.
"살만 하면 누구나 바른 소리 하기 쉬워..."
또다른 대사는 이렇다.
"배운 것들은 원래 옳아. 고생을 안해봐서 꼬인데가 없고, 똑똑하고 옳은 소리만 한다니까
"배웠다고 옳은 게 어딨어. 배운티 내느라 똑똑한 척 하는거지"

높은 나으리가 손가락 까닥하면 일자리가 생기기도 날아가기도 한다. 그 손가락에 생계가 달린 가장은 절박하고 애가 탄다.
부자의 만원은 담배불 댕기는데 써도 아깝지 않겠지만 하루종일 리어카에 가득 채운 폐지 싣고가면 그 정도 받는다.
가진 자들의 아량과 자비는 손에든 찻잔처럼 가볍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젖은 폐지처럼 무겁다. 그래서 잘사는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도, 착하기도 쉽다.

제사를 앞두고 의견이 갈리는 하인 부부에게 각자 '니 말이 옳다"라고 한 황희정승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어차피 자기가 듣고싶은 말을 들으려 왔으니 당신 뭐라하든 그리할테니 부질없어 그러셨단다.
그런데 설사 그런 깊은 뜻이 있다한들 정승과 하인 부부간이라 가능한 일이다. 만약 정승 부부의 논쟁을 보다 하인이 "나으리 말씀이 옳습니다." "대감마님의 말씀이 옳습니다."했다간 멍석말이에 뼈도 못추린다.

어찌됐건 먹고 살만하니까 자신의 신상에 탈이 없으니까 황희 정승 흉내를 내고 판관 포청천처럼 구는 게 아닌가 싶다.
"대체로 맞는 말이긴 한데 이 부분은 잘못됐고...." "아무리 그래도 험한 말을 써서야 되나."
사람마다 억장이 무너져도 말로는 조리있게 못옮기거나 정작 하고픈 말보다 욕이 먼저 튀어나갈 때도 있다. 억울한 일 많이 당하고, 없어서 괄시당해 본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그러니 이리저리 넘나들며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꼴이 볼썽 사납다. 동네 홍반장도 아니고 좁쌀영감도 그런 좁쌀영감이 없다.
진짜 가진척 하고싶고 배운 티 내고 싶거든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 진득하니 들어나주고 왜 그런지 심정부터 헤아리면 덜 알밉겠다. 오죽하면 그럴까 마음으로 다가설 깜냥이냐 지녔으면 좋겠다.

가만보면 그런 잘난 사람들이 지난 일에는 명도면서 예측은 하나도 맞는 게 없고 제가 했던 말 뒤엎는 것도 예사로 한다. 자기 신상에 불리하다 싶으면 발끈하고 작은 상처에도 돼지멱따는 비명을 질러대기 일쑤다.
사약 받아든 테스형이 그랬다더라. "니 꼬라지가 더 가관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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