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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y 11. 2021

무법자

최근에는 공권력도 어쩌지 못하는 범죄를 처단하는 ‘안티히어로’ '다크히어로즈'의 활약상을 다룬  드라마가 인기다.
대중은 왜 그들에게 열광할까?
그들의 '무법적 정의',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정의'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우리는 공권력에 의한 간접적인 정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권력은 법을 근간으로 집행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법의 형평성'은 법전에나 나오는 말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당연시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안다.

언제나 법은 서민에게 더 차갑고 기계적이며 엄중하다. 그런데 다크히어로에게 법은 성긴 그물에 불과하며 그들의 정의는 훨씬 인정스럽고 편파적이다. 게다가 즉결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사기피해자는 피해액의 환수가 최우선이고 고통 당한만큼의 보복성 린치를 더 선호하지만 , 공권력은 범죄의 성립과 적법한 절차에 의한 처벌을 우선한다.
그래서 힘없고 빽없는 소시민의 정서에는 다크 히어로의 무법과 야만적 정의가 더 가깝고 친근하다.

갈수록 첨단화되고 지능적인 범죄에 취약한 계층은 서민과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이다. 이전에 없던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이 그 대표적인 범죄유형이다.
일단 일반인으로서는 언제 어떻게 빠져나간 개인정보인지 알 수가 없다. 추적해서 발본색원해야 할 공권력은 무력하거나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꺼린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까지 의식해야 하는데다 자신의 무지나 어리석음을 자책하기에 이른다.
설사 범인이나 범죄조직을 검거하더라도 피해액의 회수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들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미약하다 못해 조소를 금치못할 수준이다.

피해자는 정신적인 2차, 3차 가해를 당하다가 마침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 도대체가 신고에서 검거, 처벌에 이르는 공권력과 판결. 무엇하나 속시원한 구석이 없다. 그런데도 주로 무지하고(혹은 순박하고)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범죄라서인지 수사기관의 의지도 법제의 강화도 미진하기만 하다. 이것이 눈 앞에 펼쳐진 냉엄한 현실이다.

새롭고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보이스피싱이 날아들었다. 스미싱 의심신고 전화번호로 보이스피싱을 하려든다. 멀쩡한 국내 지역번호다. 스미싱 범죄도 더 세련됐다. 아무리 촉각을 곤두세워도 여차하면 꼼짝없이 당할 판이다.
아무리 '열 사람이 도둑 한 놈 못잡는다'지만, 얼마나 적극적인 수사를 하고 엄중하게 다스리는가에 따라 범죄의 확산은 막을 수 있다. 의지와 관심의 문제다.

100억 자산가의 1억은 운수가 나쁜 걸로 치부하기 쉽지만, 하루 몇천원 벌이도 안되는 폐지 줍는 할머니의 100만원은 피같고 목숨줄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 <모범택시>의 무지개 다크히어로즈가 보이스피싱 조직을 척결하는 방식에 갈채를 아끼지 않는다.
지능적일 때는 더 교묘하고 야멸차게,  악은 더 독하게 대응한다. 그렇게 성긴 법망을 빠져나가는 범죄자를 야무진 주먹망으로 때려잡는다.
어디 그뿐인가. 방문을 요구하지도, 어떤 서류와 절차도 없이 클릭 몇 번으로 폐지 할머니의 손주 등록금,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준다.
법을 초월한 이 인간적인 정의에 환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누가 그들을 범법자라 할 것이며, 우리에게 도덕이나 준법정신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드라마고 허구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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