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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y 17. 2021

장렬한 최후

스승의 날 / 광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고문이 이제서야 끝났다.
자정께 친구는 내일 온라인 강의 준비라도 하듯 노트북을 꺼내들고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분명 들어가자마자 누울 것이다. 이미 준비가 된 걸 내가 알고 있는데 비겁(?)하다.
배신자. 그래도 나는 밀고하지 않는다. 그는 평소 11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래도 1시간을 더 버틴 것이다.

1시를  넘기자 선생님께서도 안방으로 후퇴하신다. 사모님과 나만 남아 마지막 일전을 치룬다. 2시를 넘겼다. 이윽고 나는 병맥주를 다 비우고 빈 접시들을 포개면서 마무리를 준비한다.

마침내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방에 들어왔다. 딸그락 소리가 들린다. 깔끔한 사모님이 그마저 설거지를 해놓고 주무시려나 보다.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정. 국가와 미래 세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우리가 도저히 못따라갈 화수분같은 삶의 지혜를 들려주신다. 거기에 더해 다시 없을 행복한 고문을 하시니 그 은혜를 갚을 엄두가 안난다.

모두가 잠든 걸 확인하고 아파트 근처를 산책한다. 공기가 상큼하다. 아무래도 소화를 다 못시키고 자야겠다. 예상대로 참패다. 흔쾌히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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