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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y 29. 2021

당신이 더 문제다

재활용 분리수거일이다. 무려 4주만에 내어놓는다. 차츰 우리집 쓰레기 배출량이 줄어든다는 반가운 신호다.

나는 부수고 새로 만드는 일이 다반사인 직업이다. 시쳇말로 많이 부수고 새로운 것을 더 만들어 낼 수록 돈이 된다.
한창 천지분간 못하고 박수받으면 도취감에 빠져들던 시기에는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내가 하는 일은 뭐지?'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고민하게되면서 회의에 빠져들듼 시기가 있었다. 세계적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명료하고 설득력있는 정의도 잘 스며들지 않았다. 나는 한국이라는 디자인이 척박한 땅을 딛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직장인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정의해서 현실에서 구현하자' 즉 내 나름으로 내 일을 정의해서 쉽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첫번째가 기존의 것을 최대한 살리는 디자인으로 폐기물 반출량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애로사항도 따른다. 재생플라스틱 섬유로 지은 옷이나 재생종이가 그다지 싸지않은 것처럼 재활용에 따른 가공비나 디자인 품을 감안하면 비용절감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 건축주에게 이 부분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눈 앞에 안보인다고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세상 어딘가에서 굴러다니고 오염시킬 겁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죄를 짓는 겁니다. 새 것보다 더 근사하게 살려놓을테니 믿으세요."

살아가며 후회할 일이 한 두가지일까만 섣부른 말과 글만큼 쉽게 저지르고 빨리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있을까싶다. 화자의 진실성과 순수함을 믿고 동조하거나 내 생각을 밝혔다가 난감한 경우가 있다.
최근 한 환경운동가와 산림청이 첨예한 주장을 펼치는 '벌목 논란'을 지켜보다가 한마디 얹었다. 대중이 간과하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일으키고 기후변화에 관한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려는 그의 노력에 감사했다. 집요한 만큼 깊게 생각하고 뜻이 높은만큼 폭넓게 고려할 것을 믿었다.
지구환경을 깨끗하게 그리고 본연의 모습에 가깝게 돌려놓겠다면 그 취지만큼이나 진실하고 순수한 접근이 아니면 안된다. 그런데 설마하며 우려했던 부분들이 드러난다. 그의 주장과 방법이 오염되거나 곁길로 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진의를 의심케하기에 충분했다.

수령 30년 나무의 벌목이 문제되는데 대통령 임기 고작 5년이다. 게다가 천의무봉한 존재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대통령을 다그쳐 삼판을 세우고 현 정책만 포기시키면 목적이 달성되는 것인가. 이전까지 한국의 산림정책은 잘 되고 있었는데 이번 정권들어 환경파괴가 일어난 것인가.
대통령이 손오공도 아닌데 머리카락으로 수천 수만의 분신을 만들 수 없다. 각 부처가 그리고 일선 공무원이 존재하는 이유다. 분야마다 오랜 경험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다. 그들 역시 전문가고 유경험자다. 그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집권 여당 뜻대로 나라가 운영된다면 지금의 혼란이 있을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사안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세세히 따지다보면 감안해야 할 것들이 드러난다. 멀리 혹은 가깝게 원근을 달리해서 다뤄야 할 부분도 많다.
더구나 수십, 수백년 사는 나무이고 후세의 후세까지도 거닐어야 할 숲을 다루는 문제다. 정작 나무는 말이 없는데 사람들의 말은 넘치고 높다. 그러니 누구의 주장이든 그대로가 정답이지도 않고 꼭 집어 이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깊고 어려우며 요원한 과제다. 그래서 더 오래 더 멀리 내다보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너나 할 것없이 인간은 연약하고 간사해서 아무리 강하고 굳은 신념을 자부해도 어느 순간 자신이 변한 걸 눈치채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문제에만 몰입해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거나 박수와 환호에 심취해 땅에서 발을 떼게 될 때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왕조시대인가. 대통령의 한마디면 수많은 이들이 검토하고 입안했을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소매 걷어부치고 대통령과  맞짱이라도 뜰 기세인 걸 보면 민주국가의 시민같기도 하다.

내게는 그의 글이 "당신 부하가 사기친 거다. 좋은 말 할 때 포기해라. 내 말 들어라. 내 편이 불어나고 있다. 내가 분명 경고했다."로 들린다.
거기에 맺는 말이 내 숨을 틀어 막는다. "내겐 문재인보다 이 나라 산림을 지키는게 더 중요하다." 왜 뜬금없이 양손에 문재인과 산림을 쥐고 나는 차라리 어느 걸 버리겠다는 선언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임기 5년인 공무원과 수천년 이어오고 앞으로도 유구할 산천이다. 이 둘이 등가를 매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깊고 멀리 보며 접근할 문제가 있고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 있다. 절차와 검토를 거쳐 숙고해야 할 일이 있고 이미 충분한 자료가 쌓여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산림정책이 전자에 해당하고 석포제련소는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모르긴해도 온 국토의 나무를 벌목하지 않는 한 수백년 사는 나무인데 그 정도 시간은 참고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는다.

당대에 크게 성공한 사업가들의 특징이 있다고 했다. 성장단계에서는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는데 정착단계에서는 "내가 잘나서..."로 바뀐다. 초기에는 운과 주변의 도움을 크게 여기는데 성공 후에는 자신의 결단과 능력을 부각시킨다는 의미다. 그만큼 인간은 상황 변화에 취약하고 스스로를 잘 모르는 존재다.
홀로 고군분투하다 마침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돼서 혹은 아무리 소리쳐도 메아리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작은 목소리에도 모두가 귀기울인다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길 바란다.
의지와 신념만 확고하다면 가깝고 작은 것부터 확실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게 더 빛나고 값지다.
이런 일은 성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성과와 검증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가능할테니까...

나 역시 아무리 대통령을 지지한 들 이 나라 이 땅과 맞바꿀 마음이 없다. 말이 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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