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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n 10. 2021

인생시계 3종세트

요즘은 시계를 찰 일이 없다. 요즘이라고하지만 수년은 족히 넘은듯 하다.

서랍에 넣어뒀던 시계를 꺼내놨다. 개별 파우치에 보관한 시계는 3종이다. 내가 가진 시계를 합치면 10여개가 될 텐데 3개만 개별로 보관했다는 말은 그나마 고가인데다 각각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아마 내가 소유했던 시계 중에 최고가는 결혼식 예물로 받은 스위스제 명품 시계였을 것이다. 결혼식 당일 딱 한번 차보고 몇 년동안 장롱 깊숙히 잠들어있다가 패물과 함께 도둑 맞았다. 내 생에 결혼은 한번 뿐이라는 뜻으로 좋게 새겼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3종의 시계가 모두 외산, 일제라는 것이다. 쿼츠 시계의 정상은 일본이다. 첨단 기술도 앞선다.

이 시계들은 디자인과 소재도 다르지만 동작방식이나 기능도 특징이 있다.
탁월한 방수기능의 순수하게 배터리로 동작하는 시계,
키네틱 기능이라해서 몇 년이 흐른 뒤에도 다시  흔들어주기만 하면 현재 월,일,시간을 가리키며 다시 동작하는 시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빛으로 동작하며 세계 어느 곳에 있든 그 나라의 시간을 가리켜주는 GPS기능이 있는 시계로 올 타타늄 바디에 가격도 셋중 가장 비싸다.

이제 일상에서 시간을 알기위해 차는 시계는 거의 무용지물이 됐다. 넥타이처럼 정중한 자리를 위한 악세서리나 만년필처럼 고가의 소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이 3종의 시계를 각별히 아끼는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한번뿐인 인생에 3가지 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수명의 유한함을 일러주는 시계다. 항상 돌아가고 있지만 배터리가 다하면 느닷없이 멈추는 시계처럼 내 생명력은 꺼져가고 있다. 언제 멈출지 모를 뿐 에너지는 여전히 방전 중이다. 폭염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얼음이 어는 추위에도, 물 속에서도 초침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내 수명은 지금도 줄어들고 있다.

두번째는 육체적 기능이 얼마 남았는지 알려주는 시계. 즉 움직임이 있어야 동작하는 시계다. 말짱한 정신이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수 없다면, 들리고 보이지만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고 싶은 장소가 있고 오르고 싶은 산이 있어도 육신이 허락하지 못할 나이가 되면 그 삶은 살았으되 생동감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정신과 영혼을 상징하는 시계. 빛을 에너지로 해서 다른 세계에서도 정확한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다. 질흑같은 어둠의 시대에서 정신은 살아남기 힘들다. 영혼이 병들고 죽었다면 숨은 쉬되 죽은 것이다.
죽음은 물에 떨어뜨린 먹물이 번지듯 다른 세계로 바뀌고 변하는 것일 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정신과 영혼은 살아 숨쉬는 생명에게 빛이다.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세계. 죽음 너머의 알 수 없는 세계에서도 그 빛만 있다면 다시 나의 시간을 가리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컴컴한 서랍에서 시계를 꺼낸다. 밧데리 시계는 현재의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쉬지않고 초침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둘은 흔들어주고 빛을 받자 오늘 지금 이 곳의 시각을 찾아 맹렬하게 시계바늘이 돈다. 그리고 마침내 세 시계는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나는 물끄러미 탁자 위에 놓인 시계들을 보고 있다.

《왼쪽부터 육체 - 정신 - 수명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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