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믿거나 말거나 나는 요리를 잘한다. 물론 백종원이 아닌 가족이나 지인의 평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콩나물국 한 솥을 끓였다. 콩나물은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다. 무엇을 해도 가성비와 맛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외국 어디에서도 콩나물을 쓴 요리를 맛보지 못했다.

콩나물 큰 봉지로 다섯 개. 실파 한 단을 사왔다. 나의 요리 비법이랄 게 따로 없다. 인터넷을 통하지도, 시간을 내어 배워 본 바도 없다.
우려내야 하는 것은 양이 많을 수록 맛있다. 무침은 양념을 아끼지 않으면 된다.
사골이 그렇듯 콩나물도 마찬가지다. 곰 솥이 넘칠 정도로 콩나물을 가득 담고 물은 절반도 채 되지않게 붓는다. 콩나물을 삶는다는 느낌으로 물 양을 적게 한다. 삶는 중간에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한다. 처음부터 열고 삶든지.
좀더 퀄리티를 높이고 싶으면 깨끗히 씻은 파뿌리를 모아 망에 담아 같이 끓인다. 파뿌리는 해장에 특효다. 한방에서도 비법으로 쓴다.
굵은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 밍밍하다 싶은 정도만 벗어나게 한다. 다 삶겼다 싶으면 불을 끄고 잘게 썬 실파을 한 주먹 뿌려서 잔열로 살짝만 숨을 죽인다.
물, 콩나물, 실파, 소금 이것이 전부다. 맛이 기가 막히다. 정수리의 천공이 열리는 것만 같다. 딸아이가 엄지척을 한다. 물 양에 비해 콩나물이 많은데 무쳐 먹기 위해 따로 덜어놓으면 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다.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 쪽파의 알리신, 칼로틴 그리고 천일염의 미네랄 성분이 불의 힘을 빌어 물에 녹여든 맛이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먹기 좋게 씻고 다듬은 것 밖에 없다.
물로 키웠건. 흙이, 바다가 보살폈건 고유한 저 만의 것을 가진 것들은 어떻게 해도 맛있다. 몸에 이롭다. 자기안에 있던 것을 내어 주기만 했는데 서로 거스리지않고 조화롭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유한 저만의 것을 가진 사람은 담백하고 깊다. 그렇지 못하면 무엇으로든 자신을 포장하거나 변질시킨다. 제 안에서 내어놓을 것이 없으니 바깥의 힘을 빌어 제 것인냥 흉내를 낸다. 그리고 움켜쥐고 내어 놓지 않으려 한다. 우러나올 게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 냄새는 역하고 맛은 텁텁하다. 세상의 껍질들만 끌어모아 끓여내면 그런 맛이 날 것 같다. 어떤 강한 양념, 아무리 많은 허브를 다져 넣어도 살려낼 수 없다.

야채도 사람도 제 안에서 내어 줄 것이 없으면 쓸모없고 하찮은 것이다. 다른 무엇과도 어울려 맛을 낼 수 없을 뿐더러 요리를 망치고 인간사를 더럽힌다.
아침 맑은 콩나물 국에서 도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