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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05. 2021

시끄럽지만 씨잘데없는

근 한달 보름만에 들르는 사무실이다. 간간이 얼굴을 비칠 때도 있었지만 온전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의자에 기대본 게 그렇다는 말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몸도 마음도 좀 힘겨웠다. 악성민원에 시달렸고 예기치않은 자재값 폭등에 몸살을 앓았다.
작정한 바고 예상했던 터였지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세상 소식과도 멀리 했다. 그래도 뚫린 귀라 들리는 소문들은 있었다.
한결같이 말을 보태고 싶지도, 더 캐서 알고싶지도 않은 시덥잖은 것들 뿐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ㅇ교수가 프린트물을 건넸다. <난중일기 /박종평>를 근간으로 임란이 발발한 5월25일(양력)을 기점으로 한 4월부터  6월까지의 기록을 달력양식에 정리한 것이다.
이전에 들이서 같이 읽고 토론했던 책이다. 그는 가끔씩 재차 꺼내 읽는 모양인데 나는 마음만 있었지 재독을 못했다. 잠시 이순신과 난중일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다시 한번 ‘이순신도 인간일까?’이라는 우문을 하게 된다. 나는 그의 글 속에 비치는 정신적 고뇌, 몸으로 느끼는 고통에 마음이 끌린다. 그는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화살을 쏘았다.’라는 대목에 자주 멈춘다고 했다. 무슨 생각으로 화살을 쐈을까?
6월14일부터 7월8일까지의 일기는 누락됐다. 6월13일은 함대가 출전한 날이다. 그날 이후 일기 쓸 겨를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순신의 짧고 간결한 문장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읽다보면 그의 심경까지 고스란히 담긴다. 엄두가 나지않는, 본받고싶은 글쓰기의 전형이다.

공사 현장은 흡사 돗대기시장 같다. 연장 소리 탓도 있겠지만 여럿이 모여 일을 하게되니 자연스럽게 사람들 목소리 톤은 올라간다.
20대부터 나와 함께 한 ㅇ실장은 동생 같은 직원이다. 그가 현장소장으로 나가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매사에 철저하고 세심해서다.
그 역시 곧 쉰을 바라보는데 아직 동안이다. 곱상한 용모지만 성격은 불같고 목소리도 크다.
나는 현장이 한 눈에 보이는 지점에 하루 종일 앉아있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너 내가 현장에서 너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지 아니?”
“뭔대요?”
“”아… 이거 큰일났네” “큰일인데…”다. 그런데 말이다. 나한테 ‘큰일’은 사람이 상하거나 죽는 거 외엔 없어.”
“그게 어떤 때는 혼잣말처럼 하는 거였고…. 어쩌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마음에서….”
“알지. 아니까 하는 말이다. 나도 그랬을 테니까. 근데 말이다. 무심코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면 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피폐해져서 그러는거다. 나도 이렇게 담담해지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거든. 의식적으로 그런 말 입에 안담으려고 해라.”

무릇 말하기 좋아하고 말 많은 사람은 둘로 나뉜다. 말같잖은 소리를 점잖게 하거나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머지는 침묵하거나 듣는 쪽이다.
토요일이다. 비가 온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는데 ㅇ교수와 둘이서 영화를 봤다. 보이 후드(Boy Hood 2014)다. 그가 이전에 봤던 영화냐고 내게 물었다. 얘기는 들었고 보려고 작정한지는 오래됐는데 못봤다고 했다.
애단 호크는 실망시키는 적이 없는 배우다. 그가 사춘기인 아들에게 여자친구에 관한 조언을 한다. “일단 질문을 많이 던져 그리고 관심있게 대답을 듣는거야. 그것만 잘하면 딴 녀석들 다 제칠 수 있어”
그 대목에서 둘이서 마주보고 한바탕 웃었다. 좋은 영화 한편으로 내 인생의 하루가 풍요로워졌다.
진리는 평범하고 주변에 널려있다. 그런데 그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남 앞에 나서길 주저하지 않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쏟아낸다. 그러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침묵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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