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방언으로 ‘곶’은 숲이고 ‘자왈’은 덤불이다. 곶자왈로 간다.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원시림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풀리지 않을 그린벨트 같은 그곳이 어떻게 무슨 연유로 개발될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테마파크 개발 단계에 참여했던 것과 소개자료에는 실리지 않는 내밀한 몇 가지를 알고 있다는 것 뿐이다.
나는 야생성과 인공미 그리고 개발과 보존의 적절한 조화를 모른다. 어쩌면 그런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이 보인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서울 사람은 제주를 찾았는데 말은 제주 토박이인 셈이다.
그래서 제주의 말은 행복할까. 둘러친 하얀 울타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말을 타 본 기억이 없다. 아니 타고 싶지 않았다. 부산 태종대에서도, 인천 월미도에서도 말을 태워준다. 말도 전국구가 되었다.
승마를 배운 적은 없지만 필리핀의 어느 섬에서 말을 달렸다. 달렸다고는 하지만 말에게는 경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울타리가 쳐져 있거나 철책에 갇힌 가련한 곰처럼 원을 그리며 돌지는 않았다. 필리핀 이름을 잊은 그 작은 섬에서 나와 말, 우리는 작은 섬을 자유로이 산책했다. 필리핀과 제주의 말. 내가 말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유난히 하얀 운동화가 인상적이었다. 노넥타이에 깔끔한 슈트처럼 정중하고 운동화만큼 젊었다. 제주에 테마파크를 조성한다고 했다. 누구나 알 만한 기업 회장의 아들이었다. 사무실로 찾아온 그를 배웅하며 운전기사가 서둘러 뒷문을 열어주는 장면을 보면서 그리고 항공편 예약을 위해 나의 스케쥴을 묻는 비서의 전화를 받고서야 그 사실이 떠올랐다.
현장은 현장사무실을 차려놓고 시작하는 단계였다. 마스터 플랜을 짜 줄 지휘자를 구하던 중이었다. 하드웨어에 채울 소프트웨어. 그릇에 새길 무늬, 담길 그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았던 것이었다. 이미 운영중인 골프장과 부대시설을 둘러봤다. 참고를 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새롭게 조성할 테마파크 내 부지를 걸으며 규모와 현황을 들었다.
서울로 돌아와 의욕적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외국 사례를 검토하고 새로운 구상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짰다. 우리의 기획안에 그도 만족스러워 했다. 그런데 진수한 배는 항구를 떠나기도 전에 예기치않은 암초를 만났다. 돈이라는 암초. 완성도를 높이려면 적정한 예산이 필요하고 걸맞는 숙련된 기술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견적서를 보냈는데 턱도 없는 예산을 제시했다. 시공 기술진을 현지 인력으로 대체하라는 지시 같은 조언도 덧붙였다.
나는 잠시 깊게 고심했다. 이제껏 고생한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해 놓은 작업이 아까워서 치받는 분노를 잠시 억눌렀다. 하지만 나는 나일 수 밖에 없었다. 미련 갖지 말라며 직원들을 위로했지만 그 미련이 내게로 옮겨온 걸 몰랐다. 분명 우리의 기획안이 어떤 식으로건 반영될텐데 그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될지 예상할 수 없었고 대책 또한 막연했다. 그것이 현실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련이 삭고 삭아 먼지로 풍화된 후에야, 최초 내 디자인 안이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 찾고 싶었다. 그런데 고고학자가 수백년 전 도자기의 작은 조각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하듯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단서는 오래전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오후 4시 40분. 주차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눈 앞에 펼쳐진 건물은 익숙했다. 이 곳에서 기차는 출발한다. 나는 늦은 방문객이었다. 매표소에서 6시 폐장시간부터 알려준다. 충분히 둘러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떨지 머리 속에 그려진다. 이미 오래 전 누구보다 먼저 와 봤던 곳이고 밟아봤던 길이다. 단 한번 정차해서 다음 역으로 걷는 코스를 택했다. 어차피 이 곳은 자연이 본캐고 나머지는 부캐다. 곶자왈이 주인이고 사람은 객에 불과하다.
기차는 오래된 증기기관차를 축소한 형태의 모조품이다. 스피커에서 설명이 흘러나온다. 영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고 한다. 내 기억에는 중국에서 들여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출발부터 묵은 기억과 선명한 현실은 충돌한다.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으로 가는 것일까. 검색해보니 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고 나와있다. 덜컹대며 제법 기차 흉내를 낸다. 첫번째 정차역에서 내렸다. 다음 역까지 걷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연못에는 수련이 드문드문 떠있다. 모네 정원의 윤슬과 수련은 분명 아니었다. 어떻게 구도를 잡아도 비슷한 각이 나오질 않는다. 아치형 다리만이 그림 속의 그 일본식 다리를 떠올리게 했을 뿐이었다. 계곡도 귀한 한라산 중턱에 습지도 아닌 호수라니. 분수가 내 뿜는 물방울은 무지개를 만들만큼 높이 그리고 미세하게 부서지지 않는다. 물이 있는 유원지 어디든 오리배는 치워졌으면 좋겠다. 걷다보니 풍차가 보인다. 돈키호테와 판초 동상 앞에서 여학생 둘이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계획은 튤립을 심는 것이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수국이 한창이다. 마침내 다음 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정차해도 내리지 않고 곧장 출발역이자 종착역까지 갈 참이다. 기차는 옷을 갈아 입었다. 숲길을 헤치고 나간다. 멀리 또 말이 보인다. 말은 바야흐로 제주의 시그니처가 됐다. 정차하는 역마다 작은 동화속 마을이 펼쳐져 있기도 하고 나름의 테마를 갖추고 있다.
나는 풀숲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울창한 숲 터널을 지날 때는 집중한다. 돌과 나무에 낀 이끼를 보고 싶어서다. 그 이끼의 후손이 아직 내 사무실에서 자란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방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운영이 순조롭다는 얘기는 어디선가 들었다.
마침내 종착역에 도착했다. 출발하면서 가깝게 다가설 것 같았던 감정의 구름은 온데간데 없이 걷혔다. 담담하려고 했다. 그래서 어디서 어디까지 내 생각을 가져간 것인지 살피지 않으려 했던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전체적인 구도 그리고 완성도와 디테일이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어서 그랬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통증없이 딱정이를 떼려고 왔을 뿐이니까.
제주도는 화산이 잉태해서 분출한 현무암 지대다. 내리는 비나 물을 붙들고 있지 못한다. 물은 어김없이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와 합류한다.
그런데 산중턱에 호수가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반기고 감상하며 환호한다. 그 곳에 있는 호수는 인공호다. 호수 바닥과 측면을 방수포로 두르고 그 위에 흙과 돌을 부어서 조성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빠져나가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소호흡기를 단다. 끊임없이 물줄기를 뿜어 대는 분수와 작은 계곡으로 흘려보내는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그것이다.
왜 친환경을 앞세운 전기차도, 산길을 몸으로 느끼는 ATV(산악바이크)도 아닌 기차일까? 제주도에 없는 유일한 운송 수단이 기차다. 비행기가 뜨고 자동차보다 배가 익숙한 제주도 사람들이 섬을 벗어나지 않으면 영원히 이용해보지 못하는 교통 수단이 기차다. 그래서 제주도를 떠난 적이 없거나 섬에서 나서 제주도로 시집 온 토박이 어르신은 기차를 타보지 못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럴리는 없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매력적인 마켓팅 포인트다.
기차는 정해진 역 말고는 정차하지 않는다. 즉 강제하지 않아도 특정 지역에서 사람 손을 타지 않게 할 수 있다. 곶자왈이 도립공원이 품고 있는 자연림 지역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가장 설득력 있는 운송수단이었을 것이다.
그 일에서 손을 뗀 얼마 후. 나를 찾아왔던 그와 그 집안 내력을 우연히 듣게 됐다. 수도권에 소유한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지으며 어떤 식으로 얼마나 공사비를 절감했는지에 관해서였다. 아들이 제주도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도 부친을 닮아 신임이 두터워서였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위안이 됐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후 6시. 미루면 또 언제가 될 지 모른다. 나는 마저 두번째 딱정이를 떼러 가던 길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