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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18. 2021

딱정이 둘

제주

말을 키우기 전 양과 돼지가 사육하던 목초지였다. 곤궁한 섬사람에게 자립의 손길을 내민 건 같은 동포인 뭍 사람이 아니라 파란 눈의 아일랜드 신부였다.
흡사 옛 군대의 작은 막사 같은 테쉬폰을 둘러보며 캠핑을 와도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구입한 게 3만평이라고 했던가. 30평 아파트에 최적화된 도시 사람은 경계선을 짐작조차 못하겠다. 경계를 대신했던 삼나무 숲은 온전한지, 부지 중간에 있던 묘는 연고자를 찾아 이장했는지 궁금해졌다. 이시돌 목장의 이시돌은 그 신부의 한국 이름도 지명도 아니다. 에스파니아 농부 출신의 카톨릭 성인이다.

족히 십년은 흘렀다. 넓은 초지 귀퉁이에 가설 천막을 치고 순탄한 사업 진행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었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
오후 6시 폐장이다. 박물관 입구에는 이미 체인이 걸려 있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곳의 책임자를 알고 있다. 그 회사의 본부장으로 있다가 이곳 관장으로 내오게 되면서 정착했다고 들었다. 오면서 연락을 해볼까 잠시 망설였다. 어색할 게 분명했다. 딱히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지 막막한데 굳이 만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회사 대표는 그보다 훨씬 젊었다. 부동산으로 부를 일군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그 회사가 운영하는 비슷한 형태의 전시관 디자인과 설계를 했었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대표는 산토리니 섬에 꽂혀 있었다. 본부장도 산토리니 출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또다시 풍차다. 산토리니의 풍차는 마을 끝 정상 부근에 바닷바람을 먼저 맞는다.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어차피 그 섬을 연상하게 하는 건 매표소와 카페의 파란색 지붕을 인 하얀 벽 밖에 없으니까. 당시에 나는 산토리니 섬 주민들이 왜 그런 건축 양식을 선택하고 마을이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졌는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파란색과 흰색을 쓰게 됐는지를 설명했었다. 환경에 적응한 결과였다. 가파른 절벽에 터전을 마련하는 극복 과정이었고 지중해 기후를 받아들인 지혜의 소산이었다. 지리적 조건과 기후에 적응한 건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 선후가 뒤바뀌면 어색해지는 게 필연적이다.

‘박물관’이란 이름은 무겁다. 무엇을 소장하고 있는지가 관건이고 그로써 후세에 전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나머지는 이를 뒷받침하고 이해를 돕는데 만족해야 한다. 내부를 둘러보지 못했으니 함부로 단언할 수 없지만 느낌상으로 실망할 확률이 높았다. 신화라는 테마처럼, 트릭 아이로 명명된 또다른 건물처럼 이미테이션과 착각이 공존할 공간일테니 나로서는 흥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다녀 온 사람들이 올린 글과 사진은 진작에 봐 뒀다. 국내 상당수의 사설 박물관이 빵빵하게 부풀려진 현란한 포장지에 안에 든 보잘 것 없는 내용이다. 나는 서울에서의 작업을 통해 회장의 의도와 사업전략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문화 예술 사업으로 분류되면 세제 혜택을 비롯해 운영 상에 유리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개략적인 구도와 배치가 아직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지워져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에서의 프로젝트가 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이 곳의 도면을 보여주며 내게 조언을 구했다. 문제점을 지적하며 몇 가지 아이디어와 구상을 선선히 얘기해줬다. 내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을 도모하든 함께 하는 사람이 비슷한 지점을 바라보고 철학을 공유해야 결과도 좋은 법이다. 출발지점부터 어긋나 있다는 걸 나는 곧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겉으로만 둘러 봤는데도 한시바삐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우려했던 것만 그대로 실현됐고 조악했다. 예상보다는 더 나았으면 바랬었는데 그 기대가 무색해졌다. 좋지않은 예감은 늘 잘 들어맞는다.

막아 설 오름이 멀리 보이는 평원의 바람이 제법 거칠다. 꼬릿한 냄새가 실려있다. 오랫동안 이 곳의 주인이었던 가축들의 분뇨 때문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땅에 꿈틀대던 생명의 흔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예민해진 내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풍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 지금 우리는 형식과 외연이 각광받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지는 노을이라도 사진에 담으려고 카페와 풍차 사이의 평원을 바라보는 트인 공간으로 갔다.
돌아서 나오다보니 하얀 벽면에 묘한 형태의 물 흐른 자국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무심코 지나쳤으면 물때로 보였을 그 곳엔 발이 여럿인 벌레들이 뭉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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