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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09. 2021

감히

지난 한달 반.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쥴리 마을’에서 작업을 했었다. 강남의 요지이면서 원룸이 밀집된 지역이다. 옛 직장이 근처였다. 당시에는 ‘선수촌’으로 불렸었다. 나가요 아니 쥴리하는 아가씨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보니 지금도 미장원과 편의점이 유난히 많다.
30년 된 단독주택을 사옥으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였다. 작업은 재미있었다. 내게 있어 '재미있다'는 말은 난제가 많았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하고싶은 대로 했다. 건축주의 신뢰로 가능한 작업이고 내 고집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폐기물의 양을 성과지표로 삼게 됐다. 성공적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이제껏 밥벌이를 위해 쌓은 악업도 벅찬데 조금씩만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지는 꽤 됐다. 건축주도 결과물에 무척 만족해하고 고마워한다.

'재미있다’보니 거의 빠짐없이 현장에 나가보게 됐다. 나처럼 매일 들르는 중노인이 있었다. 동네 대소사에 관심이 많은 주민쯤으로 생각했다. 어느날 현장 소장이 그 분 이야기를 했다.
“저기 저 건물 건물주이신데 거의 매일 들르세요. 아침, 저녁 두 번 들를 때도 있고… 공사에 대해 자주 묻고 잘한다고 칭찬도 하시고…..사진도 자주 찍고 그러시더라구요. 아들이 IT회사를 하는데 이번에 건물을 사서 ㅇ억에 공사를 맡겼답니다. 그런데 업체가 마음에 안드시나 봐요. 공사 얘기를 하시길래 대표님께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여느 날처럼 현장 맞은 편에서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 분이 오셨다.
“이건 재료가 뭐요?”
“네. 이건 원목이긴 한데….”
“담장을 치우니 훤하네. 이건 살렸고….이래야 하는데…. 몰라보겠구만…. 이건 누구 아이디어인거요? 처음부터 계획한 건가?”
“네.. 당연히 디자인부터..."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은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뵙게 됐다. "거 명함 좀 줘봐요. 우리 아들이 사당동에다 건물을 샀는데... "  
" 아...네"
건네준 명함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문자로 보내는 것 같더니 현장을 둘러보고 가셨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그 사당동 건물 공사가 중단됐다는 얘기를 현장소장에게 건네들을 수 있었다.
그날은 현장을 지켜보고 선 내 곁에 다가서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당동에 좀 가지 ?"
"싫은대요."
그 분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한동안 뚫어지게 보더니 돌아가셨다. 이후로는 마주쳐도 무언가 묻거나 내 곁에 다가오는 일이 없었다.

건물이 완공되고 입주를 했다. 입주한 다음날 들렀다. 대문 근처에 사무용 의자 하나가 버려져있었다. 사옥 이전하면서 버린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았다. 알아보니 누군가 몰래 버려두고 간 것이라 했다.
이 건물은  주차장 위에 데크를 깔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나무그늘이 드리워져있고 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다.
잠시 앉아 쉬는데 누군가 그 의자 놓였던 데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한 손에는 드라이버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조그만 뭉치 하나를 쥐고 있었다.
그 분이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겸연쩍은 표정으로 손에 든 걸 내보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침 이게 하나가 없어서...."
돌아오는 길에 그 의자를 살펴보니 바퀴 하나가 빠져있었다.

얼마전 '불편한 건축'을 추구하던 아날로그 건축가 김일훈이 작고하셨다. 그가 남긴 마지막 원고 글에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만 같다. "평생 건축하고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으니, 뜻이 있는 곳에 돈이 없고, 소신이 있으면 외롭다."
까칠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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