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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04. 2021

우리시대의 부자를 생각한다

“운전사는 현관문을 살짝 열지만, 완전히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부인이 다른 방에서 외친다. “절대 들여보내지 말아요” 그녀가 말한다. 밸러는 현관물을 강제로 열고 곧이어 그의 어머니가 남긴 고급 식탁보가 그들의 식탁에 깔린 것을 보게 된다.
밸러는 곧장 집으로 와서 고급 린넨 제품들이 보관된 캐비닛을 확인한다. 많은 제품들이 사라지고 없다. 나는 밸러가 화를 내고, 운전사를 해고하고, 어쩌면 다른 고용인들도 해고하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밸러는 그저 어깨를 으쓱한다.
“항상 아름다운 물건들을 미리미리 사용해요” 그가 내게 말한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말이요”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 에디트 에바 에거>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저자의 남편이 밸러다. 그의 아버지는 시장이었고 그 이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였다. 할아버지는 농작물 도매로 부를 일궜다. 밸러는 선대로부터 부를 이어받은 금수저였다. 밸러가 차사고로 가벼운 부상을 입은 운전사의 집을 방문하며 겪는 이 에피소드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시대로 접어들던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다.

기시감이 느껴져 지나간 책을 뒤척여 비슷한 대목을 찾는다.
“돈을 벌려면 너무 많은 소질이 필요하다. 그런 내가 돈 쓰는 방법에 관해서는 좀 알고 있다. 돈 쓰는 보람이 있고, 어디 소용 있는 일이 생기면 나는 조심없이 되는대로 쓴다. 그리고 쓰는 보람이 없고 내게 좋게 보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주머니를 조인다. 사람들이 가장 애써서 내게 감추려고 하는 도둑질의 행위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때문에 속을 덜 썩이려고 오히려 내가 그들의 도둑질을 모른 척해야 한다. 부질없는 마음의 수고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집 사람들의 도둑질을 잊어버리고 지낸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나쁜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젊은 아이들은 아직 나쁜 본에 덜 물들었다고 보기 때문에 그들이 더 미더워진다.
나는 일부러 금전 계산을 흐리고 불확실하게 해둔다. 하인들에게는 불충실하건 부주의할 수 있는 여유를 좀 주어야 한다. 이삭 줍는 자의 여유도 남겨야 한다. 자기 돈을 달아보고 세어보는 자들은 어리석고 추잡하다. 여기서부터 탐욕은 다가온다. “<수상록(Essai) / 몽테뉴>
몽테뉴 역시 부유한 영주로 산 귀족 출신이면서 법관을 거쳐 시장을 지낸 인물이다. 수상록은 16세기에 쓰여졌다.

나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나는 직원들을 내심 자신이 쌓아둔 곡식을 좀먹는 새앙쥐로 여기는 기업가를 안다. 그는 매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다그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않는다. “돈 쓰는 즐거움은 버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말하는 부자도 있다. 쓰는 즐거움은 그의 자식들이 누리고 있다. 각자의 즐거움을 만끽하니 화목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게 아이러니하다.

나는 신분으로 부와 권력이 계승되던 16세기 프랑스의 몽테뉴나 자유를 위해 부를 버릴 수 밖에 없던 20세기 에거 부부보다 이 시대의 부자가 더 도덕적이라거나 행복할 거라고 믿지 못하겠다.
나는 그들을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할 무거운 짐을 끝내 이고 사는 불쌍한 사람 쯤으로 여기며 살 것이다. 그것이 가난한 자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고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지라도.
게다가 나는 부정식품에도 탈이 안나는 튼튼한 위장을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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