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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09. 2021

나는 불안하지 않다

“식사 중엔 스마트폰 보지 마”
“아빠도 보실 때 있으시잖아요. 그럼 식탁에서 스마트폰 보면 10,000원?”
“그래. 그럼 너도 걸리면 10,000원 내는 거다.”
“에이 전 학생이잖아요.”
“안보면 되잖아. 그럼 넌 5,000원”
“음…. 아뇨. 그냥 저도 벌금 10,000 낼게요”
“아냐 넌 5,000원 , 나는 10,000원으로 하자. 대신 지금부터다.”
“네”
그러는 와중에도 맞은 편 딸은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너도 하는 거지?”
“아니. 난 안돼. 알바하는 학원일이야.”
“밥 먹고 하면 되잖아.”
“저 지금 출근할 시간 다 돼서 해야돼요.”
“알았어. 그럼 일단 너는 제외.”
오늘 아침 밥상머리 대화다. 예전 같으면 칙령 내리듯 선포하면 그만이었을테지만, 자식들도 머리가 크고 나니 타협과 절충이 필요해졌다. 꽤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나로서는 ‘아~ 옛날이여’ 탄식이 나올만도 한 일이다.
이제서야 이런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건 내가 F1경기장에서 1,500cc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란 뜻이다. 세상은 정신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만큼 빠르고, 매 경기마다 기록이 갱신되듯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생뚱맞게도 내 첫 노트북은 SHARP였다. 인생이 '폼생폼사'라 앙증맞은 디자인에 홀리기도 했지만 묵은 선입견이 한 몫을 했다.
대학을 들어가니 공학계산기를 사야 했다. 80년대 공과생들은 알겠지만 당시 공학계산기는 SHARP가 독점이었다. ‘계산기는 SHARP, 컴퓨터는 일종의 계산기니까 SHARP가 좋을거야.’ 내 의식은 물흐르듯 자연스러웠지만, 판단을 연결하는 다리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허술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신문물의 가치 판단을 주관적인 과거 경험에 근거했고, 컴퓨터에 대한 내 인식은 형편없었으며 결정은 무지한만큼 단호했다.

한때 진공관 라디오 수집에 심취했었다. 이제는 들여놓을 데가 없어 멈췄지만 밤을 새며 외국 경매사이트에서 숨막히는 수싸움을 벌리면서도 피곤한줄 몰랐다.
막귀에 가까운데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는 진공관 앰프 수집까지 넘볼 수가 없었다. 한 세기 전 물건이면서 현대에도 손색없는 조형미 때문이기도 했고, 이미 사라진 공룡처럼 덩치에 비해 왜소한 부품조합에서 오히려 인간미를 느꼈다.
무엇보다 작동되지 않은 라디오의 뒷판을 열어 이리저리 손을 봐서 마침내 ‘부웅~’ 낮은 하품을 하며 진공관이 깨어나는 순간은 어두운 분만실에서 내 아이를 받았던 그 순간만큼이나 감격적이었다. 천천히 진공관 불이 켜지고 따뜻해지면 라디오가 어눌해진 음성으로 내게 말을 건다. 남자일 때도 여자 일때도 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은지 노래부터 들려주기도 하고 여럿이서 연주 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그 진공관 라디오 틈바구니에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나가 있다. 귀퉁이에 왕관 로고와 ‘금성’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GOLD STAR’ 지금의 LG전자 제품이다. 그러고보면 내 집과 사무실, 고향집까지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LG다. 세계적 명성, 기술력과 무관하게 나의 선호도와 인식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고향집의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에 머물러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생존해 계신 큰아버지에 맞서 고향 분묘 대신 집에서 가까운 납골당에 모셨다.
“큰아버지께서 모실 거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자주 찾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모시겠습니다.” 집안 어른께는 불측했지만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그 결정은 합리적이고 현명했다고 믿는다.
우리 가족은 제사를 지낸다. 아마 내 대가 마지막일 것이다. 개의치 않거니와 선친처럼 자식에게 뿌리 공부를 따로 시키지도 않는다.
재작년부터 제사 지내는 횟수가 줄었다. 기제사와 추석이 일주일 상간이라 추석에는 납골당을 찾아 간편하게 차례를 지낸다. 장자인 내가 마지막 방어선이었는데 오랜 고심 끝에 고집을 꺾었다. 내 방어선을 무너뜨린 건 동생도 며느리도 아닌 어머니셨다.  다른 식구들은 50대인 내가 팔순 노인보다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으리라.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바뀌는 세태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변화를 주저하지 않으며, 뭉툭한 지성과 감각은 예리하게 다듬고, 감성을 식히지는 않겠다는 신념을 지킬 밖에.

굳이 밖으로 드러낼 이유도, 결코 자랑거리도 될 수 없는 자기고백이다. 맞고 그르고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고루한 인식이나 성향만을 고집하는 인물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국가의 중책을 맡는다면 이는 크나큰 문제다.
인식과 사고 수준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인물이 지도자가 되는 국가의 미래는 암울하다.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는데다 지적 능력이나 판단력마저 흐릿한 비양심적인 인물이 각광받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못하다.  

나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금의 난맥상이 웃기지도 않은 과거의 해프닝에 불과하게 될 것임을 믿고 있다. 그리고 앞선 세대의 이 부끄러운 자화상이 후대를 일깨우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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