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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23. 2021

요즘 늙은 것들은... 3편

럭비와 정치

고교시절.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수업에는 늘 맨 뒷자리 한 두개가 비었다. 선생님도 뭐라 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럭비부였다.
당시 모교의 럭비부는 전국 최강이었다. 전국에 20개 팀이나 됐을까 (2021년 현재 고등부 18개팀이다). 출전팀이 적어서인지 금방 16강이고, 8강에 올랐다. 준결승부터는 버스를 대절해서 전교생이 응원을 갔다. 우리는 수업을 빼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나는 구기종목 중에 가장 격렬한 경기가 럭비라고 생각한다.
관전하고 있으면 들소처럼 내뿜는 열기가 얼굴에 와닿는 것만 같았고, 근육과 근육,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거칠다고 하는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와는 달리 엄청난 거구들이 보호장구 하나 착용하지 않은 채 맨 몸으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와는 달리 손과 발 모든 신체를 사용한다. 럭비부인 동창들도 부상을 달고 살았다. 어깨가 빠지는 건 예사였고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듯 했다.

기원이 1823년인 럭비는 잉글랜드가 종주국이다. 그렇다보니 영연방 국가가 럭비 강대국이다. 올림픽 본선 한국의 첫 상대였던 뉴질랜드는 세계 2위다. 금메달을 딴 섬나라 피지 역시 영연방이다. 그래선지 일본 국가대표팀에는 귀화한 피지선수들이 많다. 국가대표 전체의 절반 이상이 이런 선수들이다. 강한 남성상으로 어필하는 ‘007’의 대니얼 크레이그(영국),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우(뉴질랜드)가 럭비를 했던 건 우연이 아니다. 러셀 크로우는 럭비 구단주이기도 한 럭비광이다.

럭비에서 파생된 미식축구와 달리 럭비는 170여년이 흐른 1995년에 이르러서야 프로화가 됐다. 그만큼 아마츄어리즘을 중시한다. 영국의 사립학교가 채택하고 있던 귀족 스포츠로 출발한 영향이다.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의 주요 정치인들은 사립학교 출신이 많다.
그래선지 럭비와 정치는 많이 닮았다. 막상 경기를 보고 있자면 룰은 잔인하고 야만스러운데다 선수들은 조직폭력배의 난투극을 연상시킬만큼 거칠고 불량스럽다. 온몸을 쓰고 피지컬과 스피드가 중요한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격돌한다는 면에서 정치판을 연상시킨다.
럭비공은 타원형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누구에게서 어떤 모략을 받게 될지 어떤 예상치 못할 난제와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정치와 비슷하다.

그런데 분명 다르다. 항우 장사 같은 럭비 선수들이 심판 앞에서만큼은 순한 양으로 변한다. 심판에게 화를 내거나 거친 항의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승복이 미덕이다. 걸핏하면 고소 고발을 남발하고 법정으로 달려가는 정치인과는 딴판이다.
럭비는 올 포 원, 원 포 올 (All for one, One for all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이라는 스포츠맨쉽 하에 희생과 협동, 인내를 유난히 강조하는 스포츠다.  올 포 원, 원 포 원(All for one, Onefor one) 국민보다는 당리당략에 충실하고 철저히 자신의 이해득실에 복무하는 정치와는 안드로메다만큼 멀리 있다. 그들의 모두는 정당이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또 있다. 럭비의 ‘노사이드(No-Side)’ 정신이 그것이다.
아무리 철천지 원수처럼 치열한 공방을 했더라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서 심판이 ‘No side!”를 선언하면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럭비는 승패가 갈렸어도 ‘졌다’거나  ‘이겼다’라는 말 대신 상대가 강했다는 표현을 쓴다.
이번 올림픽에서 5전 전패를 한 한국팀 주장 박완용이 “정말 아쉽다. 하지만 많이 배웠다.”고 한 표현도 그런 맥락이다. 당락이 결정되더라도 이유는 많고 변명은 넘치며 남 탓하기 급급한 정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게다가 악감정과 부질없는 미련은 이전보다 더 철천지 원수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가.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내려온다. “축구는 불량배들이 하는 신사적인 스포츠이고 럭비는 신사들이 하는 불량한 스포츠다.”
축구는 언뜻 신사적으로 보이지만 심판이 안보이는 지점에서의 반칙이 예사고,  상대팀이나 선수에 대한 욕설, 판정에 대한 항의가 거칠고 잦은 반면 럭비는 비록 경기는 불량배들의 싸움처럼 격렬하지만 상대팀과 선수 그리고 심판을 존중하고 판정에 깍듯하다.
럭비에서 ‘헐리우드 액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상대를 속이는 페이크 동작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럭비는 축구처럼 앞서 달리는 선수에게 패스하면 반칙이다. 반드시 자신보다 뒤쳐져 있는 동료에게 패스해야 한다.
그러니 럭비와 정치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럭비를 모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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