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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23. 2021

요즘 늙은 것들은...  4편

젊은 그대

지금까지 올림픽을 몇 번이나 봤을까. 철든 이후로 본 것만도 10번은 넘는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로 우여곡절을 겪고 개최된 이번 2021도쿄올림픽이 88서울올림픽보다 더 의미심장하고 감격스럽다.

88서울올림픽에서 당긴 국운의 불씨가 마침내 2021년 도쿄에서 피어 오른 것만 같다. 과거 메달의 색깔로 4년동안 흘린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평가하던 것에서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고 선수들의 선전과 노고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는 우리 국민의 현재 눈높이만큼이나 올라간 것이다.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로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높아진 위상과 밝은 미래를 스포츠를 통해 볼 수 있었으니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양궁은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역대 올림픽에서 양궁에 걸린 총 40개의 금메달 중 23개를 독식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 양궁대표팀은 88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채택된 이후 치러진 총 9번의 올림픽에서 9회 연속 우승했다. 경기력 외에도 외부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양궁에서는 전후후무한 역사적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난공불락인 한국을 의식한 세계 양궁계의 갖은 견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값진 성과다.
그 밑바탕에는 모든 종목의 모범이 되는 공정한 선수 선발과정과 선수의 심리상태와 심박수까지 재는 과학적인 훈련이 있었다. 전 세계가 추앙하다시피 하는 한국 양궁의 위상이다.

‘끝!’이라는 희대의 세러머니를 연출하며 단체전 마지막 금과녁을 맞춘 남자 양궁팀의 맏형 오진혁은 불혹이다. 팀 동료인 “파이팅!”의 김제덕과는 무려 23살 차이다.
그들의 허리를 에이스 김우진이 받쳤다. 김우진은 남자선수 중 유일하게 진출한 개인전 8강에서 석패한 후 이런 명대사를 남긴다.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래서 열광하는 것이다…… 이미 제 손에서 떠나고 누가 쏴 준 화살이 아니고 제가 쏜 화살이기 때문에...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과는 아쉽지만 그게 또 삶이 아니겠어요. 어떻게 해피앤딩만 있겠어요”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선수촌에서 트레이닝 외에 별도의 정신 수양과 소양 교육을 받는게 아닌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결과를 목표로 두지는 않아서 그냥 과정을 목표로 두고, 후회없는 시합을 계속하면서 시합을 즐기면서 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몰지각한 일부 국민들의 몹쓸 입방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한 말이다. 그녀의 다음 목표는 전국체전 우승이다. 올림픽이 아니다 전국체전이다. 한국 1등이 곧 세계 1등이니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1cm를 넘는데 25년이 걸렸다. 한국 육상 높이뛰기의 우상혁이다. 그는 한국 신기록을 갱신하며 한국 필드 육상 최고 순위인 전체 4위의 쾌거를 이뤄냈다. 메달을 아쉬워 할 만도 한데 오히려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
“아 이제 홀가분합니다. 진짜 후회없이 뛰었습니다. 진짜 이거는 후회없는 경기가 맞고요. 저는 행복합니다.
어느 순간 준비가 되고 나서 확신이 들었을 때 준비된 사람만이 자신감을 표출하는 건 자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근대 5종은 럭비만큼이나 생소한 종목이다.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인 1964년에 이 종목에 한국이 처음 출전했다. 그리고 57년만에 다시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전웅태가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그의 감회도 남다르다.
“얼마나 두꺼운 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계속 두드렸고,.. 제 동메달이 아니라 대한민국 근대 5종의 동메달이라 생각해서 너무 값집니다.”
높은 벽을 두드린 건 자신인데 동메달의 영광은 조국에 돌린다. 95년생. 26살의 한국 청년이다.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반드시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성적에 만족하는 선수가 있으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선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한국이 종주국인 태권도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부동의 세계 1위 이대훈은 16강에서 좌절을 맛봤다. 그런데 스포츠맨쉽 만큼은 여전히 금메달감인 걸 증명했다.
”저의 올림픽을 끝마치면서 이기면 기쁨보다는 상대 슬픔을 더 달래주고 또 진다면 상대의 기쁨을 더 높게 해주기로 저 스스로 약속을 했거든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지만 여기 최선을 다 안한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과묵한 선수는 말 대신 글로 대신한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4강 진출을 이끈 김연경 언니의 “해보자 해보자 후회없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김희진은 자신의 배구화에 이런 글을 새기고 뛰었다.
“NEVER SAY NEVER!”
장사로 불리는 김희진이지만 무릎 수술 직후 선수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활약했다. 퉁퉁 부은 오른쪽 다리로 솟구쳐 올라 죽을 힘을 다해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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