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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25. 2021

요즘 늙은 것들은... 5편

전쟁과 쌍둥이

“중세의 공격적으로 표출되던 쾌락이 수동적이고 순화된 관전의 쾌락으로 이행하는 현상이 문명화, 곧 서구 모더니티의 본질이다.” 스포츠에 대한 엘리아스의 사회학적 분석이다.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 열광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과 경쟁 심리를 건전하고 절제된 평화적 방식으로 발산하는 수단이 곧 스포츠인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총성없는 전쟁’이라고도 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그리고 전쟁은 ‘정치의 가장 폭력적인 현상’ 혹은 ‘폭력의 가장 정치적인 현상’이다. 그렇게 스포츠와 전쟁 그리고 정치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래서인지 올림픽 종목은 고대 전장의 전투행위에서 고안된 것들이다.
전웅태의 메달 획득으로 빛을 보게 된 '근대 5종'이라는 종목이 있다. 기원전 7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5종경기에서 비롯된 유서깊은 종목이다. 이를 근대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백작이 근대 5종으로 다듬었다.
산 넘고(육상), 물 건너(수영), 말을 타고 달리다(승마) 찌르고(펜싱) 쏜다(사격).  전형적인 전사의 스포츠다. 19세기 군인에게 필요했던 전쟁기술에서 따와서 그렇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전쟁의 폭력성과 무도함이 거세된 스포츠는 인류의 통합과 평화에 기여한다. 1차대전중이던 영국과 독일의 경우처럼 전쟁을 멈추게도 하고 내전 중에도 휴전을 하게 한다. 그 뿐인가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처럼 국가간의 대치 상황을 진정시킨다.
스포츠(Sports)의 어원은 ‘흥겹게 놀다(Disport)이다. 즉 흥겹게 노는 행위를 통해 상호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폭력성은 승부욕으로 승화시키고 무도함은 합의한 규칙으로 상쇄시켜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경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 쉽지만 실천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다.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100세 시대가 도래한 지금 어느 연령까지 젊다고 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주로 2,30대다.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연령대라서다. 물론 어깨 회전근 3개가 끊어지고도 분투한 양궁의 오진혁처럼 40대도 있다.
전쟁에는 전장을 진두지휘하는 장수가 있듯 스포츠에는 감독과 코치가 있다. 초토화된 전력의 대표팀을 이끌고도 배구 4강을 이끌어 낸 라바리니 감독은 40대 초반(43)이다.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3위의 스페인을 상대로 4점차로 석패한 여자 농구의 전주원 감독은 쉰을 바라보는 49세다. 그녀가 말했다.
“ 1승을 목표로 지금 게임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1승을 못하더라도 오늘처럼 좋은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 주는 게 제 목표입니다…… 제가 부족한 겁니다. 선수들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를 부탁합니다.” 그녀를 젊고 아름다운 지도자다.

4강을 떠올리면 국민 스포츠 축구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히딩크 감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한 일이다. 선수 시절의 활약상이나 지도자 경력이 훨씬 뛰어난 한국 지도자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외국 지도자들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그들이 지휘봉을 잡으면 숨어있던 인재들이 갑자기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바닥을 헤매던 경기력이 일취월장한다.

올림픽 출전 전 여자배구팀의 전력 약화는 이다영, 재영 쌍둥이 자매의 부재가 한 몫 했다. 차세대 유망주였던 그녀들이 퇴출된 사건은 한국 스포츠계의 병폐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선수 본인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실력이 있으면 인성 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부모와 지도자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거기에 거미줄처럼 엮인 학연과 인맥이 선수의 성장과 발굴을 가로막는 구태의연한 선발과정, 뿌리가 부실한 고질적인 엘리트 체육의 난맥상이 화근을 키운 것이다.
이런 허들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고, 처신이 자유로운 외국 감독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확률이 더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신력과 성적만을 강조하고 권위를 앞세우며 주먹구구식 작전을 구사하던 국내지도자에 비해 그들은 선수 각자의 특성에 맞춘 훈련과 포지션으로 무장시키고 소통의 리더쉽으로 다가서며 데이터와 동영상을 통한 전력분석으로 작전을 짰다. 첨단화되고 선진화된 기법을 총동원하고 억압과 지시가 아닌 소통과 이해로 선수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시대와 보폭을 맞췄던 라바리니와 히딩크는 젊고, 쌍둥이 자매를 오늘에 이르게 했던 부모와 지도자 그리고 스포츠 관계자들은 이미 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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