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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26. 2021

내 이럴 줄 알았다

스포일러 있음

며칠 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빠뜨린 대목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영화를 봤을까요?"
"글쎄요"  
"아마 봤을 겁니다. 제 생각엔..."  
그때 내기라도 걸었어야 했다. 대통령은 모가디슈를 봤다. 다만 물증이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몰랐다.
아무리 한류열풍이 불고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를 들썩이게 했다지만 국가가 직접 나서 영화를 찍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내심 영화감독을 염두에 둔 게 틀림없다.

아프카니스탄인 391명이 한국으로 온다. 오늘 도착한다고 한다.
지난 수년간 한국 정부의 아프간 재건 활동을 도운 이들과 그 가족으로 탈레반 점령하에서 처형이 확실히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했던 한국 병원과 기관청사는 이미 폭파됐다.

미라클(Miracle·기적)로 불리운 이번 탈출 작전을 위해 3국으로 피신했던 대사관 직원 4명을 다시 카불로 투입, 비상연락망을 통해 대상자들은 집결지에서 대기, 공항 진입로를 차단한 탈레반 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버스 6대에 나눠 싣고 공항에 도착, 우리 공군 수송기로 안전하게 이송하기까지 한편의 장쾌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감상한 기분이다.

외교부가 공개한 사진 한 장이 인상적이다.
탑승 전 카불 공항에서 대사관 직원이 아프칸 현지인과 포옹하는 장면이다.
김일응 참사관과 그의 동료였던 아프칸인  대사관 직원이다.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가장 기쁘다고 했단다. 안경과 마스크 때문에 조인성과 닮았는지는 확인이 안된다. 아마 3국에서 다시 카불로 투입된 직원 중 한 명일 것이다. 참사관이란 신분까지 영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아닌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탑승 아프칸인 중에는 5세이하 어린이가 100여명이나 된다고 했다. 이달에 태어난 아기도 3명이다.
불편한 군용기임을 감안해서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분유와 젓병까지 싣고 1만키로를 날라 갔다고 했다. 시쳇말로 배려심 쩐다. 한국 최초의 장거리 이송작정인 만큼 수송기 2대외에 공중급유기 1대까지 동원된 대작이다.
감독이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엄두가 나지 않을 규모다. 겨레의 숨통인 강줄기를 막아 놓고 촬영지랍시고 자전거로 답사하거나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면서 구명조끼 타령했던 허접한 B급 감독들만 봐오던 우리로서는 숨통이 터지고 자부심이 절로 생겨난다.
 
일본도 같은 날 현지 로케이션이 잡혀있었는가 보다. 속아지가 밴댕이 소갈딱지만한 나는 촬용을 위한 전용기가 이륙했다가 준비부족으로 인해 소속 기지로 회항했다는 소식에 내심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이내 배운 사람답게 일본이 자국민과 아프칸 직원을 한시바삐 피난시키기를 바라는 인도주의적 시각으로 전환한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아프간 재건에 참여한 다수 선진국이 이미 협력자 수천 명을 안전한 장소로 데려갔다.

세상일이란 늘상 그래왔지만 이런 경황 중에도 아직 아프칸인들이 인천공항을 밟아보기도 전에 정신나간 인간들이 헛소리를 해댄다. 문화, 종교적 이질감을 들어 수용를 반대한다는 청원도 올라갔다.
논거도 엉성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편견과 비뚤어진 인간성에 살짝 치가 떨린다.

동아시아를 떠도는 30만명의 탈북민을 핑계로 수용을 반대하는 변호사라는 박모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얼마나 그런 활동을 해왔었는지 뒤져봤다. 그러면 그렇지 코로나 중에도 교회 개방을 부르짖는 한국 교회 지킴이 역할을 하는 개신교인 변호사다. 2018년에도 난민 논쟁 당시에도 반대를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카불 갈 때 빈 칸도 많았을텐데 특수대원들 뿐만 아니라 이런 인간들과 이슬람 국가 선교를 독려하는 목사들 좀 태우고 가서 내려주지.

한국으로 오는 아프칸인에게는 단기체류비자가 나온다고 했다. ‘특별공로자’로 인정해 장기체류비자로 바꿔 줄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편견과 차별,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타 종교를 탄압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한국 땅에서 무사히 안착하기를 빈다.
짓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이슬람 사원도 대도시마다 들어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무슬림에게 종교는 떼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삶 그 자체다.

이쯤에서 감독 아니 대통령의 수상소감 아니 발표를 들어봐야겠다.
“우리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가니스탄 직원과 가족들을 치밀한 준비 끝에 무사히 국내로 이송할 수 있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문대통령은 “우리 정부 및 군 관계자들과 아프간인들이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면밀히 챙기라. 아프간인들이 국내 도착 후 불편함이 없도록 살피고, 방역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어 “우리를 도운 아프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우리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뭐 치밀한 준비에서 준비를 '시나리오'로, 정부와 군관계자를  영화사와 스텝으로 바꾸고 국민 성원에 감사드린다로 하면 대종상 수상 소감으로도 손색 없겠네.
아무튼 "대한민국 만세" "대한국민 만세"다. 가끔 실망스러울 때도 있는데 도저히 미워할 수는 없다. 문재인 감독 아니 대통령.

인천공항에 마중은 못나가더라도 축하주로 막걸리 한 사발은 들이켜야겠다.
위대한 대한민국에 감격해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이 목젖까지 차올라서 좀 눌러줘야겠다. 이러다 술병나도 세계 1등 의료보험이 있으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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