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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28. 2021

알바트로스

한 결인 사람들

“노래하는 모든 사람은 내 친구다. 그런데 아닌 사람이 있다. 실제 무대에서는 노래가 안되고 음원이나 음반은 화려하게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 이은미가 했다는 말이다.

그런 그녀도 30년 노래 인생에서 음반 13장을 냈다. ‘맨발의 디바’로 불리게 된 건 첫 녹음에서 청바지 스치는 소리와 구두 소리조차 거슬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만족할만한 완벽한 스튜디오를 만든 사람이 있다. ‘기술없는 기술’을 추구하는 퓨어 레코딩(Pure Recording)을 개척한 김영일이다. 30대 중반까지 클래식 매니아였다가 국악에 심취해 우리 소리를 담는 데 모든 것을 건 사람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엔지니어가 누구냐에 따라서 음악이 알려지고 음반이 화려해져서는 안될 말이다.”

이은미와 김영일은 결이 같은 사람이다. 한 국악계 인사는 그를 가리켜 "유형의 우리 예술작품을 모은 간송 전형필이 있었다면 무형의 것에는 김영일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국악을 잘 모른다. 그는 국악을 ‘이 나라 이 땅에서 국민이 모르는 음악’이라고 했다. 당연히 돈이 안된다.
그는 유명 사진 작가이기도 하다. 인물 스틸 사진 한 컷에 2000만원이다. 그렇지만 최고를 지향하다보니 그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300만원 안팎이라고 했다. 해해년년 쌓이기만 하는 적자를 그렇게 매꿔나가고 있다.

얼마전 안되겠다 싶어서 회계사 세무사 불러서 몇 년 가면 망하겠는지 계산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희망이 없다고, 완전히 길에 나앉는다고했단다. 그래도 환갑까지 버티겠다고 했는데 벌써 올해가 환갑이다.
아직 갈 길은 멀어보이고 발걸음은 쉬이 멈출 기미가 안보인다. 소중한 것을 담고 싶어 사진을 택했듯 같은 이유로 선택한 길이다.

그런 그가 5년쯤 전에 서양 음악과 다른 국악만을 위한 녹음 스튜디오를 80억을 들여 지었다.
고작 3층 높이의 창고처럼 보이는 벽돌집이다. 장비대가 60억, 마이크 하나가 5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렇다면 건축비가 20억이란 얘기다. 그것도 과하다 싶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빨간 벽돌 건물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특별함이 숨어 있다. 건물 자체에서 나는 소리 울림을 최소 화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도 설치하지 않고, 전기와 보일러 등의 시설을 모두 땅속으로 집어넣었다. 벽 두께도 1m에 가깝다. 지나다니는 차 소리도 울릴 수 있어 땅속에 기둥을 박아 건물을 약간 띄워 시공했다.
나의 ‘김영일’이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그렇게 건축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었다.

최근에 한 인터뷰를 봤다. 지금까지 국악을 투자한 돈이 얼마냐는 질문에 110억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마전 파주로 가족이 이사를 왔는데 전세란다. 서울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해서란다. 이전에는 2억 9천만원이었는데 이사했더니 3천만원이 남았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주목했던 인물이고 만화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마이크 하나까지 회사 자산으로 해놨고 자식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이미 말해뒀단다. 그래도 처자식 안굶기고 맘껏 학원을 못보냈음에도 아이들이 잘 커줬다고 안도한다.
 
김영일에게는 꿈이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음악을 알고 그 좋은 음악을 우리 안에 또 세상 밖에 알려 나가는 일. 그것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안죽는 것이 또한 꿈이다.”

부끄럽지만 내게도 애인이 있다. 이은미다. 그녀 역시 진작에 “애인 있어요”하고 공개적으로 내 존재를 밝혔다.
비록 애인사이지만 촛불집회 무대에 선 그녀는 황홀 할만큼 아름답고 열정적이었다. 촛불 시위때 모금함을 들고 목이 쉬도록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면서 시민들과 공감했던 체험이 ‘알바트로스’라 곡의 모티브가 됐다.

알바트로스는 가장 높이 그리고 멀리 나는 큰 새다.
시인은 긴 날개를 주체못해 땅바닥에 질질 끌며 다니는 모습을 보고 '하늘에서는 왕자였지만 땅에서는 비참한 신세'라고 했다. 긴 날개 탓에 도움닫기로는 땅을 박차고 날지 못해 ‘바보새’라고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면 절벽에서 몸을 날려 폭풍우 속을 날아오르는 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불편한 날개를 지녔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인이다. 삶의 파고를 넘고 시대의 폭풍우를 뚫는 긴 날개를 가진 사람들이다. 긴 역사를 그렇게 헤쳐 온 민족인 것이다. 알바트로스의 비상처럼 당시의 가장 어둡고 힘든 시기를 다같이 넘자는 기원을 담은 노래였던 것이다.

종교가 없는 그녀 또한 딱 하나의 기도를 한다고 했다.
“눈을 감기 전에 제게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잠깐이라도 알 수 있게 해주시면 제가 꽤 잘 살아온 것에 대한 칭찬으로 여기겠습니다.”

나는 김영일과 이은미처럼 가장 먼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폭풍우와 맞바람에도 끄떡없이 가장 높이 그리고 멀리 날으는 그들이야 말로 알바트로스다.
“노래를 위한 것이 아닌 일은 모두 내 인생에서 배제시켰다.” 이은미가 닮고 싶은  패티킴이 했다는 말이다.
진짜를 찾아서 제대로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들. 그들은 결코 바보새가 아니다.  
  

<알바트로스 / 이은미>

여기에 바보라 불리는 한 새가 있습니다
날개가 너무 커 날지 못합니다
땅에선 놀림을 당하며 바보라 불리지만
알고 있죠 날 수 있어 바람 거세지면
자유롭고 길을 잃은 새 거친 폭풍 앞에 섰을 때
날 수 있단다 너를 던져라 널 흔들고 있는 바람 속으로
그 바람이 나를 펼친다 너무 커서 아팠던 날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하늘에선 최고로 멋진 새죠
땅에선 내가 너무 쉬워 누구나 건드리죠
괜찮아요 용서해요 날 미워해도 사랑해요
자유롭고 길을 잃은 새 거친 폭풍 앞에 섰을 때
날 수 있단다 너를 던져라 널 흔들고 있는 바람 속으로
그 바람이 나를 펼친다 너무 커서 아팠던 날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하늘에선 최고로 멋진 새죠 oh
파도 몰아치는 바다로 그저 내 날개를 펼치고 있다
바람아 더 불어라 더 거칠수록 나는 더 뜨겁게 oh
날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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