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Sep 01. 2021

무지 진지한 과학컬럼

막걸리에 관한 변명

아직 음력이 우리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한국에서는 추석이나 설날이 매해 다르다. '이번 달' '저번 달'처럼 1년을 12개의 달(月)로 나누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선지 24절기도 음력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양력이다.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 8/7)도 지난 지 오래고,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處暑 8/23)마저 지났다. 그럼 지금 내리는 비는 여름 끝물이 아니라 가을 머리꼭지를 적시는 비다. 가을비가 장하게도 오신다.

나는 굳이 24절기가 아니라도 가을이 코 앞에 와있음을 코로 미리 눈치챈다. 어제부터 발작적인 재채기를 동반한 알레르기서 비염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국이라 버스 타서는 오해 살까봐 코를 막고 입으로 숨쉰다. 연중 두 번의 간절기에 불청객처럼 찾아오는데 겨울이 꼬랑지를 보일 때쯤 미리 봄을 예감하면서 한번 더 찾아온다.

내게는 한가지 불치병과 또 하나의 고질병이 있는데. 불치병은 아이들만 보면 정신줄을 놓는 증상이고, 고질병은 이 알레르기 비염이다. 다행히 고질병이지만 후딱 지나가긴 한다. 단골 이비인후과를 찾으면 원장이 "어떻게 오셨어요?"를 묻지 않아서 편하긴 하다.
이 '알레르기 비염'은 원인은 달라도 체내에서 발생하는 기전은 똑같다. 코 점막이 유난히 예민해서 항원에 발끈한 면역반응을 보여서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심하면 무척 고통스럽다. 언젠가는 콧구멍에 공기청정기 필터를 뜯어서 막아볼까 하는 궁리도 했던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면 공기를 걸러줘서 덜해질 거라는 나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착상이었다.

아침에 약을 찾았다. 우리집에선 거의 상비약 수준이다. 두 아이도 나와 비슷하다. 그러고보니 유전병일 수도 있겠다. 이제부터라도 애들한테 잘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 준비를 서두는 아내가 몇 군데를 일러주면서 찾아보라고 해서 열심히 서랍과 약통을 뒤졌는데 도무지 못찾겠다. "못찾겠어." 참 내...." 내 꼬라지가 한심해보였는지 아내가 눈썹을 그리다 말고 단박에 찾아줬다.  이 세상 아내들은 참 신비한 능력을 가진 원더우먼이다.

수천년동안 인류가 진화하며 남성은 생존에 진력하느라 대화에 있어도 좌뇌만 집중적으로 발달한 반면 양육, 육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대화로 풀어야 했던 여성은 좌뇌와 우뇌가 골고루 발달했단다.  그래서 평소 남성은 좌뇌 위주로만 대화를 하고 한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지만 좌뇌와 우뇌가 골고루 발달한 여성은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도 대화가 가능하단다. 진정한 멀티플레이어는 여성이다. 내 경우처럼 아내는 남편의 육아까지 챙기기도 한다. 약 한 알을 먹고 현관까지 갔다가 미심쩍어 한 알을 더 챙겼다.

비가 쉽사리 그치지 않을 모양새다. 예보로는 밤까지 내린다고 했다. 비에 관한 노래가 많지만 내 나이쯤 되면 세시봉의 <비의 나그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님이 오시나 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로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님이 오셨다. 톡이 왔다. "뭐하세요?" 막걸리 마시잔 소리다.
이 노래는 이렇게 끝맺는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나는 개사해서 부르련다. "내려라 밤비야 막걸리 마시게 내려라~"

그나저나 아침에 먹은 비염약의 지속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비염도 염증이라 알코올이 좋을리 없다. 여지껏 자주 무시해서 곤욕을 치렀지만 정신을 못차린다. 아직 철이 안들어서 그렇다. 아내 임신 중일때 철분약 좀 같이 먹어둘 걸 그랬다. 지속시간이 얼마가 됐든 약먹고, 술먹고, 술먹고 약 먹으면 된다.

막걸리 마시러 가면서 부추전이나 싸서 가야겠다. 노래 가사에도 있지만 밤비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다고 했지 않는가?
사람의 귀는 눈보다 예민하다. 그래서 생계 전선에서 퇴각한 여유있는 중장년층이 오디오와 바람이 나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전집이 부산해진다. 비 내리는 소리는 전 부치는 소리와 비슷하다. 소리에 반응해 뇌에서 연상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 뇌과학이다. 저녁에 막걸리 먹으러 갈거란 얘기를 길게도 썼다. 그렇다고.....

작가의 이전글 묘비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