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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06. 2021

개가 되고 싶진 않아

우익삼락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통과 보수의 힘 안에 우리 미래를 열어젖힐 힘의 바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을 우리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잊어버리고 박멸시켜 버림으로써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죠."

작가 김훈은 보수주의자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우익, 진보는 좌익과 잇퀄이다. 그런 그가 "우익삼락"을 제창하고, 노동자를 위해 마이크를 든다. 일각에서는 진보로의 전향이라는 표현을 쓴다.

" 우익에겐 세가지 즐거움(右翼三樂)이 있어. 세금 왕창 내고, 아들 최전방으로 보내고, 질서를 지키고. 아 그래야 우익이 완성되는 거 아냐. 그런데 강남에 잘 나간다는 성형외과 의사들이 소득세 50만원 나왔다고 항의하지. 그런 사회는 부숴야지.”
그러면서 자신도 굳이 말하라면 ‘중도 우익’이라고 했다. " ‘칼의 노래’의 성공으로 세금도 왕창 냈고, 아들 군대 갔다 왔고... 우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지는 거야."

그가 바라보는 진보나 좌익에 대한 시선이 변했다는 근거 역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좌익과 진보는 세상을 맡을 수 없어. 물적토대가 없으니까. 비참하게도 우리 시대의 물적토대의 역사는 우익이 만든 거야. 좌익이 반항하더라도 우익 토대 아래서 반항한 거라고. 그리고 한국사회의 물적 토대를 건설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야.”

그의 시선을 좇아가는데 별다른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기준으로는 보수주의자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아웃사이더인 김훈이 일용직 노동자를 위한 대열에 앞장서고 팽목항을 찾는 일, 스스로 보수임을 자처하는 내가 보수당에 더 신랄한 비판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어져있는 이분법적 구도와 얼토당토 않은 정치 논리에 매몰되어 변형되어버린 이념적 가치에 순치되지 않았기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혼란과 대립을 반복하는 데는  상당 부분 정치권에 줄을 대고 연명하는 자들과 정치인의 책임이 크다.

전통적인 가치와 완고한 사회 체계에 대립각을 세우는 사람들은 어느 세계에서도 구현되지 못한 미래적 기준으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과거에 이미 형성되거나 구축된 토대를 애써 외면한다.

반면 자신이 속한 계급과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제껏 전승되어온 과거 유산 - 이해관계 또는 유불리라는 체로 거른 - 에 집착하고 유지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정작 이런 자들이 사생활에서만큼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이 이제껏 주장해 온 공적인 원칙이나 가치에 위배되는 언행을 서스럼없이 혹은 몰래 저지른다.
지탄받아 마땅한 짓을 저지르고도 권력으로 누르거나 덮어버리고, 기존에 구축된 세력의 힘을 빌어 희석하거나 당연시하도록 은밀히 강요한다. 그것이 보수의 가치이고 전통인양 착각하게 만든다.
현재 한국의 보수와 우익을 표방하는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는 또한 우리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는 걸 경계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된다.  
'학습된 무기력'은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부정적인 자극이 계속되면,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1975년 마틴 셀그리만은 개실험을 통해 이를 주장했고 이후 도널드 히로토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도출해 냈다. 무기력도 학습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놀랍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개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놀랍고, 인간으로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구태의연한 후진 정치, 부패한 권력과 언론의 야합으로 회의론과 비관론이 뒤섞여 먹구름이 걷히는 날이 보기 힘든 한국사회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학습된 무기력'에 감염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발생요인은 너무 많고 위험은 늘 공존하고 있다. 우려스럽게도 일각에서는 그런 현상이 목격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학습된 무기력'은 주변의 도움을 얻어 성공의 기억이 누적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방탈출 게임' 참여자의 심리상태다. 퍼즐이나 퀴즈로 탈출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워 해야 하고, 귀한 존재라는 걸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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