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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06. 2021

어디세요? 지금 뭐 하세요?

매직타임

매직타임(Magic Time)이란 게 있다. 하루에 두 번 해뜰녘, 해질녘 어스름한 30분 상간에 가장 아름다운 빛을 비추는 마법에 걸린 시간대를 일컫는 말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사진이 일상화됐지만 사진 작가들은 목을 매고 이 시간을 기다린단다.

새벽 첫 차를 탔다. 첫 버스, 첫 기차는 왠지 첫 사랑처럼 설렌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여명의 커튼을 내가 열어 제끼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날 첫 차는 계획했던 게  아니다.
신경이 예민한 편이다. 불이 켜져 있으면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작은 기척에도 잘 깬다. 그런데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금새 잠드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안방 화장실 불이 켜졌다. 화장실 틈새로 새어나온 불빛에 깨버렸다. 밤을 새던 딸래미가 안방 화장실을 쓴 거다. 얼마전 거실 화장실 비대가 고장났다. 잠이 달아나 버렸다. 그 길로 과일 몇 조각을 먹고 출근하게 됐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가로등들이 일시에 꺼졌다. 첫 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매직타임에 걸렸다. 전에도 봤던 정경이지만 처음 보는 것만 같았다.  

수많은 ‘ㅇㅇㅇ 키즈’를 탄생시킨 박세리는 원래 초등학교 육상부였다. 육상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서 아버지 권유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중3때 얼떨떨한 상태에서 KLPGA 우승을 거머쥐었다.(국내 최연소 우승) 그것도 당시 국내 최고의 프로골퍼를 상대로 연장전에서 거둔 성과였다.(그래선지 선수생활 동안 치른 연장전에서 6전 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꿈의 무대인 LPGA 진출 6개월만에 우승한다. 그것도 메이저 대회였고 그해 신인상까지 휩쓴다.

박세리의 해뜰녘 매직타임은 그렇게 안방 화장실 불이 켜지듯 갑자기 왔다.
선수 생활 마지막 꿈인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점수를 확보하고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갖은 수를 쓰고 어떤 몸부림을 해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올가미였다.
신인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작심을 하고서부터 게임이 풀렸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은퇴 준비는 3년에 걸쳐 계획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졌다. 스스로 은퇴를 결심하고 3년이라는 기간을 설정해 놓고 차곡차곡 밟아간 것이다. 아무리 큰 대회를 우승하고도 흘리지 않던 눈물이 은퇴 경기를 마치자마자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다.
그녀 일생에  두 번의 매직 타임이 있었다. 예기치 않게 잠든 침실에 불 켜지듯 찾아온 매직타임 그리고 화톳불처럼 길게 사그라들던 매직타임. 그녀는 성공했으며 행복한 사람이다. 알든 몰랐든 매직타임의 의미를 제대로 간파했고, 본인이 의도한대로 두번째 매직타임을 준비해서 맞이했던 사람이니까.

젊은 날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웬만해선 30~40대 초년고생에서 밀리지 않는데 내 분야에서 어깨를 견줄만큼 지난한 시간을 보냈던 친구가 있다.
아이들 크는 모습도 못봤고 일주일에 집에 들어오는 날이 이틀이나 됐을까. 우리 둘은 그랬다. 다른 점이라면 나는 사무실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보낸 밤이 많았고, 그는 고객과의 술자리로 밤을 샌 적이 많았다.
그래선지 먼저 사업을 시작했고 등락을 거듭하며 회사는 조금씩 성장해 갔다. 겸임교수도 먼저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강남에 큰 사무실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매머드급 사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곧 이 사업 건으로 너를 내 밑에 들여 놓고야 말겠다.”고 호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뿐인 딸에게서 문자가 날아들었다.
애기때부터 봐왔지만 처음 받은 친구 딸의 첫 문자는 “아빠의 부고”였다.
딸과의 저녁약속이었다고 했다. 친구와 같이 가도 되냐는 딸의 청을 흔쾌히 허락한 그는 약속시간에 회사에도 약속한 장소에도 없었다.
마침내 딸이 아빠를 찾은 장소는 회사 지하 주차장이었다. 그는 약속장소로 출발하기 위해 차에 앉았다가 그대로 숨진 것이었다.
심장마비. 아빠의 주검을 딸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
내 친구의 매직타임은 언제였을까? 해뜰녘은 너무 더디게 왔고 길었다. 그런데 해질볔의 그것은 잠이 깨버린 내 타박에 딸이 황급히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던 것처럼 다급하고 황망하게 그리고 순식간에 왔다.
가끔씩 마지막 순간, 가슴에 통증을 느끼던 그때에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해본다.

하루에 매직타임이 두 번이듯 누구나의 인생에도 공평하게 두 번의 매직타임이 찾아온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나온다. 그 순간을 산부인과 특실에서 맞을 수도 있고, 불행하게도 탯줄을 단 채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한다.
어찌됐든 살아남으면, 일반적인 수명을 다한다면 두 번의 매직타임이 주어진다. 그런데 짧든 길든, 급하게든 느긋하게든 오는 매직타임은 감지하지만 가는 매직타임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준비한대로일 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에 놀아날 지 알 수 없다.

노을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즐겨야 하는 이유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만이 바로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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