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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06. 2021

공공의 적

카페 창 밖으로 너댓살 돼보이는 꼬맹이가 씽씽이를 힘차게 밀고 지나간다. 아마 길에서 마주쳤으면 무슨 말이든 걸었을테고 녀석의 뒷꼭지를 한참 지켜봤을 것이다. 아기들의 발길질,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목젖은 언제봐도 힘차고 사랑스럽다.

인구 감소를 넘어서서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회자되는데 누구는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 포화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일상에서 예전에 비해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걸 체감한다. 어찌됐건 지구상의 인구는 증가일로에 있는데 한국 인구는 지체되거나 감소추세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나라가 사라질 거란 오지랖 넓은 외국 학자의 주장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는 줄어드는데 세계 인구는 증가하니 국내에 유입될 인구가 적지않을 것이란 전망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을 주창하는 환웅의 자식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한국인’ 그리고 ‘한국’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머잖아 도래할 다민족, 다문화 현상에 대한 인식전환이 없다면 완고한 ‘민족주의’는 한반도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요소가 될거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가 있는 반면 국토가 줄어드는 나라도 있다. 20세기까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유토피아를 구가했던 나우루공화국이다. 한때 교육과 의료는 물론 먹고 사는 게 다 무료였고 부리는 사람들은 외국인일 정도로 부유했던 이 나라는 울릉도의 1/3면적에 인구 15,000명의 작은 섬나라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협에 처한 데는 세계적 기후 변화와 환경 재앙 보다는 정부의 실책과 국민의 무지가 한 몫 했다. 땅이 낮아지면 물이 차오른 건 당연하다.
이 나라는 땅을 파먹고 산 나라다. 새똥이 퇴적한 질 좋은 인광석이란 천혜자원이 그것이다. 2003년 정부가 인광석 고갈을 공식발표한 이후 이 나라는 지상 낙원에서 종말이 다가오는 제2의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다. 나라도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인광석이 석유보다 비쌌던 건 질좋은 화학비료 원료인 인의 함량이 높아서였다. 인구와 비료의 상관관계는 무척이나 깊다.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 중 하나는 살기 힘들면 번식을 조절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생존과 번식의 으뜸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식량 증산이 없었다면 20세기 초까지 16억에 불과하던 세계 인구가 100년만에 70억을 넘길 수 없었다. 여기에 기여한 것이 비료다. 한때 그 역할을 했던 것이 인광석이었는데 유한한 자원이었다.
이를 공기 중에 거의 무한한 질소로 화학비료를 생산할 수 있게 한 인류의 구원자가 있었으니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1868~1934)’다.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자가 명멸했지만 인류의 삶과 역사에서 그만큼 지대한 공로를 세운 과학자을 찾기는 힘들다. 인류를 기아의 공포에서 해방시킨 성인으로 추앙되기에 손색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동시대 활동한 같은 유대계 독일인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알아도 프리츠 하버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상과 이념이 달랐고 독일이 일으킨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기화로 인생행로가 갈라졌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프리츠 하버’를 비교해보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20세기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유대계 독일 과학자인데다 노벨상 수상자다. (프리츠 하버 1918, 아인슈타인 1921) 그런데 프리츠 하버는 노벨상 이전에 민간인으로는 드물게 철십자 훈장을 받은 전력이 있다. 세계최초로 ‘독가스’를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1차세계대전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실제 전장에 살포하게 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1차대전 중 중립국으로 피신했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원자폭탄을 개발했다고 잘못 알려졌지만 그의 과학적 성취를 바탕으로 다른 과학자가 개발한 것이다.

프리츠 하버는 전쟁을 옹호한 국수주의였지만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이자 전체주의를 혐오했다.
종교에 있어서도 유대계이면서 프리츠 하버는 개신교 신자였다. 조국인 독일에 대한 지독한 애국심으로 홀로코스트에 쓰인 독가스를 개발해서 자신의 친척마저 희생되게 했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종교가 없었으며 반핵주의자였고 반민족주의자였다.
같은 화학자였던 아내가 자살까지 할 정도로 말렸던 독가스 개발에 매진했던 프리츠 하버와  자신의 학문적 성과가 원자폭탄 개발에 쓰인 것을 괴로워하며 반핵을 주창했던 아인슈타인. 나는 두 사람의 인생 행로에서 현재 한국 사회를 양극단으로 갈라놓고 있는 우리 안의 집단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과학자에게 유대계라는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열등감이 있었다면 한국인에게는 뿌리 깊은 역사적 열등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과거 일제 치하 식민지 시대와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그것이다.
시대적 상황에 조응하는 저마다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열등감이 깊을수록 식민통치에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동조하며 동족에게 가장 지독하고 잔인하게 굴었다는 것이다. 독립투사와 조선인에게는 일본 고등계 순사보다 조선인 끄나풀이 더 공포의 대상이었다. 피지배자의 열등감을 더 투철한 황국 신민이 되는 방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이후에도 그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지 못한 탓에 오래된 과거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이 아직까지도 혈통을 타고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친일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하고 토왜로 잔존하는 기득권 세력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들의 조상이 동포를 탄압해서 물려준 물질적 토대가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해서 현재도 호의호식하며 과거의 영광, 자신들만의 세상을 도모하려 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친일은 부끄럽거나 아픈 과거도 아니거니와 일본이라는 나라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친일의 기억은 불가피했던 선택이고 아련한 향수에 불과하며 일본은 추종과 흠모의 대상인 것이다.

역사를 공유하고 뿌리가 같으며 한 언어를 쓰는 북한을 탄압하고 말살해야만 될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유달리 한 민족을 내세우면서도 철저하게 이념으로 북한과 남한을 갈라놓으려 든다.
미국이 식민지배나 군정으로 통치한 나라들 중 가장 성공적으로 개신교를 정착시킨 유일무이한 국가가 한국이다. 북한을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만 간주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변질된  '한국적 개신교'의 교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친일은 반공을 거쳐 미국 사대주의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렇게 시류를 잘 타고 넘은 자들이 득세했었기에 그들의 정신적 혈통적 후손들에게 북한은 철천지 원수이며 타도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열등감을 벗어나는 가장 수월하고 게으른 방식인 ‘적을 만드는 방식’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이념이나 사상,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슈에서 양극단을 치닫는 이들의 유난한 공격성과 적개심에는 이런 심리가 내재하고 있다. 청와대로 쳐들어가고 전쟁을 일으켜서 북한을 멸망시키자고 부르짖는 일부 세력이 원하는 정책, 지지하는 정당, 사대하는 국가 그리고 믿는 종교에 공통점이 발견되는 이유다.

현대에 이르러 국가는 수많은 개인들의 계약으로 성립한 정치체로 보는 시각이 대세다. 개인, 즉 국민을 강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아인슈타인도 프리츠 하버도 결국은 개인이다.
민족, 이념, 사상, 종교를 달리하는 개인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되는 시대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개인마다의 의식수준 그리고 내면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사실 나우루 공화국의 암담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인광석의 고갈 때문이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지도자와 무능한 정부,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밀려든 물질적 풍요에만 탐닉하고 사치에 빠져든 국민이 더 큰 문제였다. 상실해버린 노동 의지와  향략에 젖어든 습관 그리고 황폐해진 정신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두 위대한 과학자들의 인생행로가 바뀌고 후대에 평가가 갈리는 것은 그들은 한결같이 뛰어난 두뇌를 가졌으되 다른 정신세계와 내면을 소유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나라의 미래는 국민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미래지향적 사고는 과거를 올바로 인식하고 현실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구태의연한 사고와 현실에 대한 비난으로만 국민의 환심을 사려 들고 다수인 사회의 어둡고 소외된 계층보다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 미래를 지향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차단하지 않는다면 한국도 나우루공화국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망상속의 베네주엘라가 문제가 아니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전 지구적 과제에서부터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문제까지 산적해있는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과거로의 회귀와 현실의 안주는 퇴보를 의미할 뿐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새로운 변화와 과감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고 저해하는 세력이야 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공공의 적이며 악이다.
결국은 어른들의 올바른 선택만이 희망이고,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 줄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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