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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10. 2021

원할수록 구속될 밖에

말레이지아

포레스트 검프의 첫 사랑이자 영원한 연인은 제니이다.
그런데 제니는 한니발 레터, 조커를 제치고 영화 역사상 최악의 악당 1위으로 뽑히는 진기록도 가지고 있다. 검프에 대한 애정만큼 미움도 크다는 걸 증명하는 흥미로운 자료다.

워싱턴 반전시위에서 검프는 제니와 짧은 재회를 하게되지만 제니는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산다며 떠난다.
제니의 다른 삶은 히피였다. 히피는 60년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전후해  발생한 문화현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집시가 변형된 삶이다.
유럽 집시의 본산은 루마니아로 알려져 있지만 유랑민족답게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됐기에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전혀 무관해보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치현와 벗님들의 ‘집시 여인’이 유행했던 것처럼 집시는 익숙한 단어가 됐다. 제니가 한때 집시여인이었다.

대륙을 이동하며 살았던 육지의 집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바자우족'이 있다.
지구의 70%는 바다이다. 그런 바다에 집시의 삶이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다. 바자우족은 필리핀과 보르네오 섬 인근 바다에 사는 15만명 정도 되는 소수민족이다.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배 혹은 수상가옥에서 수 세기에 걸쳐 내려 온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마을은 가까운 육지에서 4시간은 가야 되는 바다 한가운데 산호가 융기한 지역이다.

바다에 떠내려 온 나무로 '뽄도한'이라는 수상가옥을 짓고 집과 집을 잇는 다리 같은 길을 놓아 한 마을을 만든다. 대여섯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은 친족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다.
그들에게도 하루하루의 삶은 중요한 것이어서 '경작'을 하고 '사냥'을 한다. ‘아갈아갈’이란 우뭇가사리 같은 해초를 양식하는 것이 농사이고 드넓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사냥이다. 척박한 삶 속에서도 여인네들이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은 소중하다. 쌀과 해조를 빻은 가루에 물을 섞어 얼굴에 바른다. 이 '버락'이 천연 자외선 차단제이자 유일한 화장품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을 바다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조달하는 지 궁금해졌다. 빗물을 받아 저장해서 쓴다.

모든 생활을 자연과 바다에 의지하니 평생 육지를 밟아보지 않고 죽는 사람들이 많다.
바자우족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지아 등지에 흩어져 산다. 그런데 국적도 주소도 없다. 국민으로 등재되어 있질 않으니 당연히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다. 언어조차도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쓴다.
나는 바자우족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국민이라는 말초차 생소할 이들의 삶이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바자우족 주민이 노래 부른다. “나는 가진게 없는 바자우, 나와 내 생선을 받아주세요.” 체념과 궁상이 아니라 안빈낙도로 들린다.
바자우족 말에는 없는 게 있다고 했다. “원한다”는 단어가 없다고 했다고 했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게 많은 문명사회의 우리들. 원하는 걸 얻기해서는 영혼까지 팔 기세인 도심 생활에 찌들인 내게 잠시나마 안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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