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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30. 2021

어머니의 일침

“문재인이 그 놈의 새끼…. 모가지를 똑 따서 죽여버리면 속이 시원하겠구만….”

어제가 선친의 기제사였다. 음력으로 추석 일주일 뒤다.
추석과 기제사가 일주일 상간이다보니 지난 몇 년간 가족들 간에 추석차례는 건너뛰자는 논의가 활발했었다. 올해는 추석차례를 별도로 모시지 않고 성묘를 대신한 납골당 방문을 한 지 두 해째가 된다.
이렇게 정해지기까지 최대 난관은 장남인 나였다. 막내동생은 말을 한번 꺼냈다가 내 강경한 태도에 함구했고, 며느리들은 의견 제시를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디어는 어머니와 동생 간에 오간 대화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제수씨는 제사의 대부분을 준비하는 형님(아내)이 아무 말 없으니 딱히 의견이 없었고, 아내는 내 평소 생각과 의지를 익히 알고 있으니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내 완강한 고집을 꺾은 건 어머니셨다. 꽤 오랜 기간 나를 설득하셨는데 그 첫마디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내가 니 마음 안다. 와 모르겠노. 고맙지. 애미로서 니가 그런 의식을 가진 게 나는 참말로 고맙다. 근데…..”
언제나 어머니의 말씀은 논리와 타당성에 근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른다운 설득력을 지녔다.
이런 식이다. "니 아버지기도 하지만 내 지아비다. 나 또한 니한테는 살아있는 조상이고, 내 생전에는 나도 지아비 제사를 모셔야할테니 암만 니가 장자라도 내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서두를 꺼내시고는 제사의 참 의미, 형식이나 절차보다는 진정성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을 해서 두루 기쁘고 마음 편한 가족행사가 돼야한다는 말씀이시니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결국은 어머니에게 설복한 모양새가 됐지만, 실은 당신이 언급하지 않는 다른 이유 때문에 고집을 꺾었다.
올해 여든 둘이신 어머니는 설, 추석, 기제사에 당신이 손수 마련한 제수음식 몇 가지는 반드시 올리신다. 아무리 못하게 말려도 그 고집은 꺾을 수가 없다. 아마 당신의 거동에 큰 문제가 없다면 살아계시는 동안 그렇게 하실 분이다.
그런데 몇 년전 폐암 수술을 받고 난 후부터는 기력이 예전만 못하신 게 느껴졌다. 제수음식을 위해 제대로 된 재료를 찾아 먼 데까지 가서 장을 보고 며칠동안 준비하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가 가장 컸다.   

올 기제사는 좀 특별했다. 제사 하루전이 우리 부부의 코로나 2차 접종이었다. 아내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을 걱정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우리는 둘 다 오한, 발열을 동반한 몸살을 혹독하게 치렀다.
그렇게 하룻동안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었으니 당일날은 나 역시 출근을 하지 않고 아내를 도왔다.
저녁8시쯤 도착이라고 했는데 차가 밀려 9시가 다 되어서야 어머니와 동생이 도착했다. 동생 손에는 곰솥 한 가득 든 탕국과 오색나물, 찐 생선이 들려있었다.
어머니의 엄명으로 꼬맹이 셋과 집에 머물게 된 제수씨는 떡을 보냈다. 아내와 사전에 얘기가 되어있었다. 나머지 음식은  2차접종의 부작용을 염려한 아내가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해서 냉장고 쟁겨둔 걸 데우고 조리하면 됐다.

제사를 지내고 오랜만에 둘러앉은 식탁에서 동생이 먼저 ‘50억’ 이야기를 꺼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당신이 예전 노인대학의 노래교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셨다.
“화장실을 갔는데 어떤 여자(역시 노인)가 “문재인이 그 놈의 새끼…. 모가지를 똑 따서 죽여버리면 속이 시원하겠구만….”그라더라꼬”
“그래서요?”
“그래서 내가 “아요. 보소…. 당신이 마음에 안들모 안찍어주고, 싫타카모 됐지. 그래도 아직꺼정 우리나라 대통령인데 모가지를 똑 따고 싶다 카는기 뭔 숭악한 소린교?
그 양반이 당신이 그란다고 우찌 될 사람도 아니겄지만…. 어데가서 그런 소리 하모 문재인이를 다시 보겠능교? 당신 얼굴을 한번 더 쳐다보겠능교 야? ” 그랬지”
“엄마 좀 그러지 마.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 사람은 그 말 듣고 뭐래?”
“뭘 뭐라캐. 암말도 못하고 얼굴만 울그락불그락하두마… 어째 하나같이 사람들이 그 모양일꼬….”
“그럼 엄마는 이번에 누굴 찍을건데?” 동생이 물었다.
“이ㅇㅇ이밖에 더 있겄나. 그런데.... 홍ㅇㅇ가는 말은 함부로 해도 시원타꼬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만... 우째 꼭 행사가 폭력배맨키로 사법고시 패스하고 검사까지 했다믄서 그럴꼬 말이다.... 암만 그래도 지금꺼정 자식 낳고 같이 사는 안사람하고 처가집에 글카모 안되지. 그건 막돼먹은 불상놈인기라. 배울 걸 제대로 못배운기라… 배워야 할 쩍에…. 쯔쯔”

당신은 코로나 이후로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뉴스도 TV로만 접하시는 게 전부인데 젊은 우리들보다 세상 돌아가는 걸 정확히 읽고, 몰랐던 사실도 알려주실 때가 많아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니 대중의 비합리적이고 그릇된 판단이 정보의 부재나 언론의 편향성 때문이라는 견해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으시니 과연 대선에서 이ㅇㅇ과 홍ㅇㅇ가 격돌할 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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