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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30. 2021

사람이 늘 꽃보다 아름답지는 않다

가평

화롯대(모닥불을 피우는 일종의 화로)라는 캠퍼라면 갖추고 있는 장비가 있다. 17년전 구입할 때도 그랬고, 지금은 더 다양하고 가벼운 것이 많이 나와 있지만 내 것은 엄청 무겁고 실하다. 무척 단순한 용도의 이 물건을 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직업상 "싸고 멋지게"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평생 듣고 살아온 나로서는 이 말과 비슷한 어떤 말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아주 희소하거나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이런 유사한 말에는 본인이나 타인의 의지나 태도 혹은 노력에 대한 전제가 결여되었거나 의미를 축소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싼 회를 싸게 많이 먹고 싶다면 패혈증이 기승을 부릴 때 한산한 횟집을 찾으면 된다. 조류독감이 유행일 때 오리고기집을 찾으면 오리탕 정도는 서비스로 제공된다.
좋은 물건을 싸게 가지고 싶다면 한철 정도는 기다리는 인내나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그나마 가능하다.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그 사람에게 보내는 신뢰만큼의 유무형의 댓가를 이전에 지불했거나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싸고 좋은 것(심지어 멀티기능까지 갖춘)'에 유달리 연연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거저 주어지는 행운처럼 누리고자 하는 경향만 짙은 게 사실이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일찍 깨우치고 일상에 반영하고 살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잘 모르면 비싼게 좋다'라는 진리를 실천할 수 없는 삶이라서도 그렇다.

호기심도, 취미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궁리하기보다 몸부터 움직이는데 익숙해진지는 오래다. 전원생활이나 자연인을 좋아하지만 그림에 떡인 나는 캠핑이나 여행으로 아쉬음을 달랜다.
내 생각에 전원생활이나 캠핑의 대전제는 하나다. '수고로움과 불편함을 즐긴다'가 그것이다. 전원생활을 원하면서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김메기를 싫어하거나 캠핑의 준비와 마무리를 힘들어한다면 이는 전혀 준비가 안된 것이다.
물론 '돈이 신을 대신하는 세상'이라 김메기와 전지작업에 사람을 살 수도 있고, 비용을 더 지불하면 텐트 안에 샤워실과 가전제품까지 갖춰진 호화로운 글램핑이 있다. 그런데 이는 전원 생활과 캠핑이 가진 본연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흉내내기에 불과할 뿐이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이 그른 경우는 별로 없다.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 본 적도, 앞으로 재미삼아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성격을 특정하거나 단정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내 성향을 스스로 분석해보면 '직진형 인간'이 아닌가 싶다. 애두르지 않는 직설적인 말, 결심하면 왠만한 장애는 문제 삼지 않는 행동, 타진하는데 들이는 시간보다 시도해서 깨지는 걸 선호하는 면등이 그렇다. 그렇다고 사전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편이냐 하면 전혀 그렇질 않다. 누구보다 오래 알아보고 깊이 공부하는 편이다. 다만 결심에서 실행하는 단계까지 간극이 얼마나 빠르고 전격적이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비자로서 싼 완행을 몇번 옮겨갈 것이냐 아니면 좀 비싸더라도 직행을 탈 것이냐는 문제에 봉착하게 마련인데 내 선택은 늘 직행이다.
다른 장비도 그렇지만 화롯대 한가지만 보더라도 '가볍고 튼튼하며 싼' 물건은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특히나 야외에서 막 다루게 되는 물건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엄청난 열기를 담는 그릇이다보니 주소재는 스텐이다. 내 것은 철판 두께는 물론 구조를 받치는 환봉조차 아이 손가락 굵기만 하다. 위에 올려 고기를 굽는 석쇠의 두께도 볼펜심 두개 굵기다. 그러니 당연히 무거울 수 밖에 없다. 휴대성을 포기하는 대신 견고함과 긴 수명을 얻은 것이다.
다소 비싼 가격을 주고 샀는데 캠핑장에 가면 가장 많이 버려놓고 가는 물건중 하나가 석쇠다. 가는 철사로 엮인 석쇠는 싼 대신 한번 쓰고 버리기 마련이다. 화롯대 역시 얇은 철판으로 만든 것은 오래 쓰지 못한다. 짐이 안되어서 편리하고 손쉽겠지만 그동안 사들인 횟수를 더해보면 아마 결론적으로는 내 것이 싸다.

내가 파악한 세상 사물의 이치는 비슷하다. 싼게 비지떡이고, 두루 좋은 성격이 능사가 아니다.
잠시 세상사를 잊고자 캠핑을 다녀온 며칠 사이 스페인의 라팔라 섬에서는 화산이 터졌고 국내에서는 대장동 이슈가 가열되고 있으며 서푼 가치도 안되는 수박 논쟁이 한창이다.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정치가 특히 대통령 자리는 일종의 화롯대다.
정치판의 속성은 '수많은 인간의 욕망이 부딪쳐 불꽃이 일고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화산'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모두가 함구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성과라도 가져 올 수 있는 국가 지도자로 '두루 좋은 성격의 점잖고(혹은 점잔을 빼면서) 인격적으로도 완벽한 인간형'을 물색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마치 가볍고 싸면서 튼튼하며 심지어 다용도로 쓸 수 있는 화롯대를 찾는 것과 흡사하다.
소시민인 나역시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무난하고 유머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모나고 까다로우며 불불을 가리지 않아 주위를 긴장시킨다는 말을 듣는다.

대통령은 받들어야 할 임금도 아닐 뿐더러 내 스승이나 부모가 되어서 나만을 보호하고 위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임금조차도 성인군자가 아니고, 자애로운 내 부모도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일 수가 있다. 적어도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그가 제시하는 비전이 부도덕하거나 변화하는 세상에 걸맞지 않는 게 아니라면 지난 과거 경력과 성격에 비춰봐서 강한 추진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검증된 일 잘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나는 국부와 국모로 불린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을 알고, 국민 각자의 내재된 저열한 물질적 욕망에 의해 선택한 대통령의 악업을 목격했으며 대중에 비친 이미지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연민으로 능력과 무관하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의 최후를 목격했다. 역대 어느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점잖으며 긴 안목으로 바둑을 두듯 포석을 깔고 있는 대통령을 지켜보고 있기도 하다.
한때 유력한 여권의 대선주자로 손꼽혔던 인물을 두고 세인의 평가는 점잖은 성격의 각료로서 진중한 몸가짐을 높이 사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냉혹한 심판대에 올라간 순간 점잖음은 음흉함으로, 각료로서 보인 일처리는 환경이 갖춰진 참모역에 어울릴만한 것으로, 진중한 몸가짐은 두리뭉실하고 무책임한 처신이 가져온 것임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대장동 이슈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을 믿어서가 아니라 이 사건을 부각시켜 이득을 보려는 세력에게 휘둘리는 사람들이 안쓰럽고 한심해서 한마디는 하고싶다.
작은 물건 하나 사는데도 꼼꼼히 검색해보고 비교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이 문제를 입에 올리려면 시행 사업이 무엇이며 그동안 어떻게 해오고 있었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SPC, PF 정도는 기본 상식으로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정도의 사전 정보와 지식을 장착하고 이미 알려진 대장동 개발 건의 전후를 살폈는데도 '화천대유'라는 별스런 이름의 회사와 당시 전직 시장을 엮는다면 이는 본인의 인지능력이 한참 모자르거나 비틀린 편견의 소유자 또는 음모론의 신봉자일 가능성만 남을 것이다.

이제껏 많은 위선적이고 영악한 무리들이 우매한 군중을 선동하거나 자신들의 잘못을 덮을 때 구사하는 방법이 있다.
사건을 단순화시켜 초기에 부정적으로 각인시키거나 어렵고 애매한 용어와 복잡하게 흐트려 군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순수한 과학자 Native Scientist가 아니라 편향된 '전략가 Biased Tactician'에 가깝다는 사실을 악용한 것이다.
즉 불완전한 대중은 '진실 추구'에 관심을 갖거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으로 선하고 바른 선택을 할만큼 합리적이거나 객관적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보다는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지기 전에 선입견부터 가지고 있는데다 지극히 한정된 단순한 정보에도 너무 쉽게 만족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초기에 접하는 정보가 무척 중요하고, 이 정보는 이후에 주어지는 다른 진실되고 많은 정보를 무색하게 만든다. 각인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반대의 효과를 노릴 때는 애초에 무관심을 유도하는 전략을 쓰게 되는데 아예 정보 접근 자체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복잡하고 어렵게 사건과 정황을 꼬고 비틀어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천문학적 액수가 걸린 삼성가의 유산상속건보다 대장동 개발이 더 부각되고, 젊은 세대일수록 정치 무관심이 심각하고 우려되는 이유다.
수박 논쟁의 핵심도 하나다. 그 표현의 진의나 해당 인물이 실재하느냐 아니냐가 문제이다. 수박이란 단어를 두고 왈가불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사람이 우주라고 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물건에도 큰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화롯대가 가르쳐 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거든 내게서 나는 악취를 지우고 향기부터 갖추는 게 바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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