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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Oct 28. 2021

설거지론

새벽 2시에 설거지를 한다. 세탁기나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것보다야 덜하겠지만 층간소음때문에 아내조차 삼가하던 일이다.

다행히(?)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다. 물컵, 밥그릇, 국그릇, 냄비, 후라이팬까지 거품을 듬뿍 내서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샤워기를 틀어놓고 시원스레 부신다.
물기를 빼야 할 것들은 차곡차곡 뒤집어  선반에 올리고 큰 것들은 제자리에 넣어둔다.

양파 껍질은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육수를 냈던 다시마는 건져서 음식물 봉투에 담는다. 싱크대 거름망에 붙은 찌꺼기도 탈탈 털어 담았다. 씽크대 주변을 훔치고 빤 행주와 고무장갑은 싱크에 거꾸로 걸쳐놨다.
이왕 버리러 나갈 참이니 집안에 휴지통도 비워서 쓰레기 봉투에 꾹꾹 담는다. 쓰레기 봉투가 3개다. 작은 음식물 비닐봉투는 물기가 떨어지지 않게 쓰레기봉투안에 같이 넣어서 들고 나간다.
밤공기가 제법 차갑다. 잔반통에 음식물은 버리고 비닐은 따로 버리는 통이 있다.  쓰레기봉투까지 수거함에 던져놓고 크게 한숨 들이키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여기까지 장면만 두고보면 영락없는 자상하고 살뜰한 남편이다.
그런데 아니다. 아이들이 내가 하는 음식을 좋아해서 가끔 만들어주곤 했었지만 설거지와 음식물쓰레기 배출까지 하게 된 건 최근 일이다. 이전부터 쓰레기 분리수거는 내 담당이었지만 오늘은 분리수거하는 요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오늘 밤의 설거지는 느닷없는 일이다.
하얀 거품에 오물을 씻겨내고 거름망에 낀 작은 찌꺼기마저 탈탈 털어 없애고 싶어서 그랬다. 그렇게라도 세상의 더러움이 조금이라도 가셨으면 좋겠다. 귀를 씻어내고 싶은 뉴스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리는 요즘이다.

그래도 오밤중에 반려견에게 사과주는 사진 찍어 올리는 것보다 설겆이가 훨씬 낫다.
이 시간에 우리 망고는 자고 있다.
설거지야말로 진정한 패밀리비지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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