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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Oct 28. 2021

무엇이 되고 싶냐면

다시 태어난다면 등대지기가 되고 싶다.

도움이 간절한 누군가가 있고 내게는 줄 것이 있고 우리는 모르는 사이다. 모른다는 게 중요하다. 홀가분한 자유와 가벼운 흥분을 가져다주는 것 중에 그보다 더한 것은 없다.

등대를 올려다 보는 나즈막한 숙소가 있어도 좋겠다. 나무오두막이어도 좋고 거친 벽돌집이어도 상관없다. 내 손길이 가야 온전히 내 것이 되는 빈 틈 많고 서툴게 지은 것이라야 한다.

새 아침에 뻐근한 몸을 일으켜 등대로 갈테다. 눈 부비듯 등대 눈알을 닦고 삐걱대는 계단을 손 볼 것이다. 하릴없이 긁적인 낙서장와 몇 번을 봤는지 까먹어버린 책과 소음에 간간히 사람 소리가 섞이는 라디오로 하루를 보낼테다.

어스름한 저녁에는 만찬을 준비할테다. 노른자 터진 계란후라이와 삭은 열무김치에도 바다는 파도 연주를 들려주고 창밖 노을이 스탠드등을 켠다.

어둠이 찾아들면 온전히 나와 등대만이 옷을 벗는다. 별보다 과묵하고 조심스런 관객은 없다. 세상에 남은 유일한 빛으로 바다를 비추면 나는 너울너울 미친 놈처럼 춤을 출테다.

이름 모를 풀꽃과 나를 외면하는 바다새와 영혼까지 휘청이게 하는 바람만이 친구인 그곳에서 혼자만의 꿈을 꾸고 몸서리치는 고독을 달게 안고 뒹구리라. 잠꼬대는 파도가 움켜쥐고 멀어져 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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