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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Oct 28. 2021

홍대 점쟁이

한 동네에서 이십년쯤 둥지를 틀고 있다보면, 그것도 카페와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가을 낙엽처럼 간판이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 중심 상권이고 보면 어느새 반풍수에 제법 점쟁이 흉내는 낼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카페나 식당이 생기면 인테리어를 보고 내심 6개월 아니면 그보다 오래 버틸 것을 예측하고는 한다. 6개월은 자립할 수 있느냐 아니냐 기로에 서게 되는 내가 정한 최소한의 시한이다. 보통 반년이면 총알 즉 매출이 부진할 경우 오픈비용외 여유자금이 동이 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심증을 굳히기 위해서는 직접 방문해서 메뉴와 가격 그리고 맛을 보면 더 정확하겠지만 이제는 굳이 그런 발품을 팔지 않아도 시쳇말로 개략 견적이 나온다.
누구나 전문가의 손을 빌리거나 자신의 감각으로 인테리어를 하게 되지만 전문가라 할지라도 의뢰인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고, 더구나 자신이 남다른 감각을 지닌 주인이라면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을 게 분명하다. 인테리어에 주인의 전략과 전문가적 역량이 배여 나온다는 말이다.

물론 세상 일은 모두 그러하듯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다. 반지하에다 인테리어에는 그다지 신경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 침침한 실내, 환기설비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옴싹달싹하기도 버거운 좁은 주방임에도 십년 넘게 대기줄을 늘어뜨리며 장수하는 가게도 있다. 멀리서도 찾아 올 만큼 음식 솜씨가 좋고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주변에 유사한 메뉴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이럴 때가 확률이 필요하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내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는 20%를 넘지 않는다. 내가 유달리 탁월한 직관을 가졌거나 영험한 예지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유심히 관찰하고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직업적인 감각이 발달해서이고 반복된 경험에서 오는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로서 자아낼 수 있는 분위기는 업종마다 달라야 하고 주력 상품이 무엇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햄버거를 파느냐 아니면  곱창을 파느냐에 따라 다르고, 커피 맛으로 승부를 보느냐 아니면 다른 메뉴까지 취급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최근 홍대 주변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던 중에 코로나까지 엎친데 겹친 격으로 쓰나미가 되는 바람에 건물 임대료의 절반 정도를 감당하던 1층 상가가 많이 비어 있었다.

사무실에서 몇 발짝 되지 않는 편의점에 갔다가 그 건물 1층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 걸 보게 됐다.
불과 1,2주전까지 새로운 임차인이 들지 않아 비어있던 자리다. 쇼윈도 너머로 내부를 스캔하고 밖에 내놓은 배너의 메뉴를 보고서는 착찹한 심정이 들었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퓨전요리에 가까운 안주와 주류를 파는 가게다. 공사 차량이 들락거리는 걸 보지 못했으니 이전에 있던 일본식 우동집을 조금 손 본 정도일 것이다. 딱히 인테리어의 영향력이 크지 않고, 규모가 작은 편이라면 권장하고 싶은 현명한 방법이다.

그런데 내 눈에 거슬렸던 것은 벽면에 걸어 둔 네온 조명이었다. 그것도 딱 성인 눈 높이에 걸려 있었다.
장사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맥주, 소주 그리고 직접 요리를 한 안주가 메뉴다. 그렇다면 좌석 회전율이 라면집처럼 빠른 게 좋을까 아니면 회전율은 느리더라도 객단가를 높이는 게 유리할까? 나는 면적도 그리 넓지 않은데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해서라도 객단가를 높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손님을 오래 머물게 하는 인테리어를 해야한다. 가령 의자도 딱딱한 소재의 세련되고 늘씬한 스타일보다는 푹신한 소재로 마감한 다소 둔중해 보이는 것이 좋다. 접시 두어개는 놓을 수 있게 테이블은 좀 더 넉넉한 사이즈로 구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으로 조명을 잘 써야 한다. 너무 밝아서 불그레 취한 얼굴색이 완전히 노출될 정도는 아니지만 상대방의 컵이 비었는지 알 수 있고 고기와 야채는 뚜렷히 구분될 정도면 적당하다. 그래서 천장 전체 조명이 밝아서 좋을 것은 없다.
안방 형광등 같은 주광색 조명은 이런 경우 최악의 선택이 된다.  따뜻한 백열등 빛을 내는 할로겐 국소 조명이나 크리스털 구슬이 달린 포인트등으로 지나다니는 동선을 밝힐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테이블 마다에는 와이어나 파이프로 내린 갓이 달린 팬던트 타입이 적절하다. 역시 주광색 조명은 별로다. 시각에서부터 음식의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주황색 계열의 난색이 식욕을 자극하고 붉은 색으로 갈수록 음식 재료를 신선하게 보이게 한다. 그래서 드물게 실내를 청색이나 녹색으로 마감한 음식점을 보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테이블에 갓이 달린 팬던트 등은 직접적인 광선을 덜 보게해서 눈이 쉬이 피로해지지 않게 한다. 그런데 벽면에 네온 글씨의 조명을 걸어둔다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일단  붉은빛 눈부신 네온에 자꾸 시선을 뺏기는 데다, 눈은 쉽게 피곤해진다. 오래 머무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불리한 여건을 극복할 만한 특별한 사유 즉 아주 저렴한 가격 혹은 뛰어난 맛으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면 성공확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본식 우동집처럼 그리 오래 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 비었다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길 반복하는 또다른 건물 1층 자리가 있었다.
카페에서 횟집으로, 횟집에서 옷가게로, 옷가게에서 다시 카페로, 심한 해에는 두 번 바뀌고 중간에 몇 개월 공백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반년전 쯤에 다시 카페가 인테리어를 하고 오픈하는 걸 보게 됐다. 그때는 후한 점수를 줬었다. 최소한 망해서 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인테리어에서부터 타겟고객과 심지어 공략 시간대까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지금까지 유심히 관찰 중인데 소규모 점포들이 불황을 겪고 있는 중에도 꾸준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선 이 카페의 인테리어는 컬러와 조명으로 승부를 봤다. 천정, 벽체, 바닥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까지 블랙이다. 심지어 각 테이블마다 높인 조그마한 스탠드까지 올 블랙인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 카운터는 최소량의 조도를 유지하면서 장식장이 오브제처럼 실내 인테리어에 녹아 들게 꾸몄다. 장담컨대 그다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블랙은 거의 모든 컬러를 받쳐주지만 브론즈 컬러와 매칭이 될 때 더 고급스럽다. 검정 갓 의 작은 스태드에서 나오는 백열등 빛이 그런 연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 커피잔 2개만 올려질 테이블이 클 필요도 없거니와 스탠드의 국소조명만 비춰줘도 충분하다. 고객은 당연히 연인이거나 친구 관계로 보이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단체석이 될 만한 테이블은 아예 없다. 2인용 테이블 뿐인데 필요하다면 테이블을 붙여서 4인석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천정등은 없다. 촛불처럼 각 테이블에 놓인 스텐드등과 서비스 카운터의 등이 그나마 사물의 윤곽정도를 비춰 줄 뿐이다. 한 낮보다는 저녁 시간대에 영업을 집중하고 설사 낮이라도 독특한 분위기를 해칠 정도는 아니다. 대로변 가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아직 그 카페의 커피 맛을 보지는 못했다. 아무렴 어떨까. 담배꽁초 푼 물 정도만 아니고 주변 커피숖보다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정도의 맛이면 족할 것이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 말이 있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효율적인 공간 연출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선택과 집중을 잘 하면 됩니다. 거기에는 물론 컨셉이 가장 중요하고 컨셉을 받쳐 줄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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