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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06. 2021

나비효과 1

“문신이 아름답군요”
평일 낮 이 사우나를 찾는 사내들은 대개 두 부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거나 인근 가게에서 밤일을 마치고 씻으러 온 조폭들이다.
눈 마추치기도 꺼려지는 한 젊은 조폭의 몸을 쓰다듬으며 감탄한 사람은 고 황현산 선생이셨다. 느닷없는 손길에 흠짓 놀란 조폭은 허리를 굽히며 “어르신 멋지지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했다는 일화를 읽으며 미소가 지어졌다.

그 광경이 눈 앞에 그려지면서 내 젊은 날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동해 황현산 선생댁을 검색해봤다. 방학동에서 정릉으로 이사했다는 기록이 마지막이다. 유흥가가 밀접했던 것 같지는 않다. 내 직장생활의 마지막은 강남 논현동이었다.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하던 시절. 회사 건물 뒷 편 골목에는 오래된 목욕탕이 있었다. 밤샘을 한 다음날 아침 그 목욕탕를 찾는 일이 잦았다. 매번 인근 유흥가에서 쏟아져 나온 밤일 마친 우락부락한 사내들과 마주쳤다.
원치않게 아침부터 화투판처럼 등짝의 동양화 감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날은 사장과 함께 목욕탕을 찾았다. 183cm, 130 kg를 육박하는 사장의 몸집은 험상궂은 그 사내들에 뒤지지 않았다. 단지 아무런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만 달랐다. 나는 느긋하게 탕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그림 감상을 하고 있었고, 사장은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고 있던 중이었다. 자욱한 증기, 육중한 사내들로 실내는 무겁고 조용했다.

갑자기 “우당탕” 침묵을 깨트리는 요란한 굉음이 들렸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진 곳은 사장이 세신하던 구석자리였다.
스테레스 세신배드의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대로 폭삭 내려앉을 수가 있을까. 사장은 베드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쿳션 배드와 함께 내려앉았으니 충격은 있었겠지만 다치지 않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우습다고 해야할까 나는 표정이 난감해졌다. 당황한 세신사는 얼음이 되어있었고, 목욕탕 안의 모든 시선은 한 곳으로 쏠렸다. 문신으로 도배된 사내들 틈에 그렇잖아도 눈에 띄던 희멀건한 사장의 등짝과 엉덩이가 거기 있었다.
사장은 고개도 들지 않고 잠시 그대로 있다가 짐짓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느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별수없이 나도 목욕을 끝내고 따라나갔다. “괜찮으십니까?”
“아이 씨… 족팔려”

그런데 정작 내가 감탄한 문신은 출장 갔던 부산의 어느 호텔 사우나에서 만난 일본인 중년 사내의 것이었다.
가슴팍 용대가리로 시작해 어깨를 넘어가 또아리를 틀듯 배를 휘감아서 장딴지의 꼬리로 끝이 났다. 나머지 빈틈을 살아서 펄떡일 것만 같은 잉어와 여래상과 무사 그리고 각종 문양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만난다면 눈에 보이는 그것들로 한 편의 이야기를 엮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당시 내가 황현산 선생만큼 지긋한 나이였다면, 그리고 앞뒤를 재지 못할만큼 작품성에 탐닉했다면 나 역시 그 사내의 몸을 쓰다듬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내들처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여성의 문신하면 1990년대를 풍미했던 모델 이승희의 나비문신을 떠올리게 된다.
배꼽 아래의 아스라한 위치에 새겨진 그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이 일으킨 바람은 신드롬을 일으킬만큼 거셌다.
황현산 선생이 쓰다듬었다는 문신 그리고 나를 감탄하게 했던 일본인의 용문신과 한국을 들어다 놨던 이승희의 나비 문신은 다른 듯 한가지다. 무심하게 화투짝 보듯 했던 목욕탕의 그 숱한 문신과는 대별되는 것이다.

문신은 욕망의 상징이다.
문신을 새기던 타투이스트와 그 문신을 쓰다듬던 황현산 선생의 손길은 미의식의 발현이자 예술적 탐닉의 결과다.
조폭과 이승희는 자기과시와 미적 추구라는 본능적 욕망에 이끌려 자신의 몸을 캔버스로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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