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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06. 2021

나비효과 2

도시는 욕망의 분출구다.
예술과 디자인이 혼재하고 본능과 기교가 넘실거린다.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목욕탕의 증기처럼 가득한 도심 곳곳에서 갖은 문신들을 만나게 된다.

도시의 문신은 간판(sign)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 드러나는 문신인 셈이다.
목욕탕 조폭의 그것을 만날 때도 있고 일본인의 등짝을 보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황현산 선생과 일본인의 그것은 좀체 드물다. 이승희가 재미교포여서인지 그녀의 문신같은 간판은 다른 간판들에 가려져 한국에서 보기 더욱 힘들다.

세계 각국을 두루 돌아봤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도시의 간판운 개략 세 부류로 나눈다.
유럽, 홍콩 그리고 한국이다. 이태리나 프랑스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작고 세련된 간판들, 홍콩의 2층버스를 타고 둘러보는 홍등가 작부의 화장같은 그것과 한국 중심가를 가득 메운 크고 다양한 형태의 그것.
간판이 문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교체가 자유롭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고, 같은 점은 그 자리는 늘 다른 간판으로 채워져 문신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유럽의 작고 독특한 간판은 이승희의 나비문신같고, 홍콩의 그것은 요란하게 채색된  일본 야쿠자의 등판 같으며 한국은 목욕탕에서 내 눈을 어지럽히던 조폭들 등짝의 화투짝 같다.

한국의 간판은 근대화와 더불어 세 단계 정도를 밟아온 것 같다.
60~70년대 극장 간판처럼 판떼기에 손으로 상호를 쓰던 시대가 있었고, 조명을 사용하게 되면서 발달한 90년대의 네온싸인이나 플렉스 간판이 휩쓸던 시대 그리고 다양한 폰트 사용과 레이저 컷팅으로 세련미가 더해진 잔넬싸인이 그것이다.
물론 실험적인 독특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간판도 있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한때 도심을 휩쓸던 네온싸인은 눈부심과 천박한 발광색 , 수작업의 어려움과 낮은 내구성 그리고 높은 전력 소비로 침체기에 들어선지 오래되었기에 실외용으로 거의 쓰이지 않다. 그런데 아직 홍콩은 네온싸인의 천국이다.
플레스 간판은 초창기 주유소의 캐노피 전체를 두른 간판으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플렉스는 간판을 덮은 유연성이 뛰어난 PVC원단의 이름이다. 불투명한 원단이 빛을 투과하기에 외부조명을 대신할만큼 환하고 밝다. 그 원단 위에 여러 컬러의 시트지로 상호를 붙이는 방식이다. 지금도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잔넬간판은 채널이라고도 부르는데 입체로 두드러진 문양이나 글씨를 만들어 전면에 빛이 나오거나 후광을 줘서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간판이다. 조명을 넣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가 도심정비사업을 할 때 지원하는 간판이 대부분 이것이다.
한국의 도심을 가득메운 건물들은 이런 간판들을 빈틈없이 붙이고, 세워서 여백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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