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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06. 2021

나비효과 3

수많은 회사와 상가들은 간판이 마치 경쟁력의 지표라도 되는듯이 너나 없이 크고 화려하며 눈에 띄게 제작해서 내건다.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고 매출을 높이려 안간힘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욕망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졌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쯤 세계 각국의 유명한 도시들을 다녀봤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프랑스의 상젤리제 거리를 거닐어 본 사람은 느낄 수 있다. 세련된 감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작은 간판들이 아름다운 건물의 배꼽 아래 새겨져 있는 장면은 우리의 눈을 상쾌하고 기분 좋게 만든다.
간판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건물들이 즐비한 한국의 도심 거리와는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는 한국의 간판문화가 우리의 대화 방식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목소리도 자연히 커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성이 오가고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우리는 이를 소음이라고 부르고 외면하기 일쑤다.
광고와 홍보를 위한 간판도 마찬가지다. 남보다 크게만 만든다고 해서, 눈에 띄는 위치에 설치한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낮은 수준의 마켓팅 전략이다. 남들도 그 정도는 따라하고 같은 방식으로 압도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지인 중 한 사람은 유난히 목소리도 작고 차분하다. 자신이 말할 순서가 되면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것처럼 잠시 뜸을 들인다. 그리고 찬찬히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을 한다. 왁자지껄한 대화를 나누던 나머지 사람들조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느라 숨소리까지 고르게 된다. 물론 과장 없는 솔직담백한 표현과 풍부한 식견이 한 몫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한국 도심의 간판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 양상처럼 보인다. 효과를 반감시키고 상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더 크게 목청을 돋우고 나중에는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서 소음이 되고마는 대화처럼 아무도 눈여겨 보지않고 기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동물과 사람, 각양각색의 도안과 채색이 서투른 솜씨로 뒤엉겨 있는 문신은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 뛰어난 미적 구도와 참신한 발상 그리고 세련된 디테일로 만든 간판들일수록 주목을 끈다. 크면 클수록 스쳐 지나칠 뿐 각인 효과는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울퉁불퉁 근육을 키운 거구의 보디빌더들 틈에 조각처럼 빚은 단단한 체구의 격투기 선수가 있다면 더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다.

나는 한국 도심 거리가 즐거운 산책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촐랑대며 팔을 흔드는 원색의 풍선인형과 나이트클럽 기도처럼 버티고 서있는 스탠드 간판을 피해다니는 일은 피곤하다. 맞춘 퍼즐조각처럼 빼곡한 간판들과 빌딩의 이마를 가린 거대한 간판들의 향연이 벌어지는 거리는 숨을 가쁘게 만든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고 싶은 간판들을 만나고 싶다. 은밀하고 수줍게 날아다니는  나비 문신들의 도심을 활보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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