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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06. 2021

별거 아닌 별거... 인테리어

친구가 이사를 했다.
비록 월세가 더 비싼 곳으로 옮긴 내키지 않는 이사였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는 것 같다.
깔끔한 성격에 멋도 아는 친구라 이사 후에도 이곳 저곳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다행히 채광이 잘 들어 시들하던 화초에 생기가 돌아 무척 기쁘다고 했다.

밀레니엄을 맞느라 세상이 부산스럽던 그 해 겨울에 나는 양평에 있었다.
고급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에서 인테리어 파트를 맡고 있었다. ‘디자이너스 에디션’으로 불린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나 외에 또 한 명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있었다. 당시 국내 굴지의 인테리어 회사 이사였다. 두 회사가 콘소시엄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기에 소속이 다른 두 수석 디자이너가 파견나와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이미 50대 중반을 넘겨서 나와는 나이차이가 많았지만 몇 개월 이상을 붙어 지내다보니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됐다.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점심 식사 후 슝늉 대신 냉면 그릇에 소주를 한가득 따라 마시던 음주 습관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집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었다. 그는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데도 전세로 2년마다 이사를 한다고 했다. 계약을 연장했던 적도 없다고 했다.
“뭐하러 집을 사. 2년마다 마음에 드는 동네, 그것도 새 아파트로 옮겨 다니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수월한데….”
그는 서울 곳곳에서 다 살아봤기에 이제는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와서 이사를 다니겠다고 했다. 자식들이 학교를 마치고 독립해서 더 자유롭게 이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만약 지금 만난다면 이후로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아직도 전세를 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인테리어를 하다보니 가까운 지인들이 이사를 하게 되면 인테리어 관한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있다.
매번 다른 조언을 하게 되는데 이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과 성향, 향후 계획과 추구하는 삶이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가장 대별되는 경우는 전월세인가 아니면 자가인가 하는 것이다. 집은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고정된 자산이다.
집은 고정되어 있으니 소유와 주거를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
소유와 주거가 분리된 전월세 경우에는 주어진 공간에 소유한 것들을 맞출 이유가 없다. 즉 침대, 식탁, 소파, 커튼, 식탁보까지 공간을 채울 온전하게 내 것인 것에 가치를 두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건이 허락되어 소유하게 됐을 때 비로소 공간에 맞춰 더 채워 넣거나 공간 자체를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적어도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나중을 위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저렴하고 잠시 쓸 것들로 구비하는 소비는 어리석다. 차라리 당장은 부담스럽더라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씩 구비하는 것이 옳다. 그저 그런 한 셋트를 사느니 정말 마음에 드는 하나를 사는 게 현명한 투자다. 그것들은 최소한 어디를 가든 함께 할 것이고 머무는 공간의 만족도를 높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을 입힐 수록 빛이 나는 내 것에 사치를 부려라. 지혜로운 소비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디자인 감각이 높을 수록 보물을 발굴하게 된다. 늘 강조하지만 눈이 보배다.

고정된 실내 여건을 그대로 두고 가구나 소품으로 공간을 만족스럽게 꾸미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첫번째 방법은 주거 환경에서 무한 공유할 수 있는 것에 더 가치를 두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다. 채광, 경치, 공기 등에서 만족감을 느끼면 내 것이 아니라서 함부로 변화시킬 수 없는 공간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채광이 잘 드는 남향이라면 화초를 가꾸는 취미를 가져볼 만하고, 서향이라서 노을이 아름답다면 거실 창 쪽에 큰 테이블을 둬서 저녁 식사를 하는 식이다.  

채광, 경치, 공기는 공간의 질과 확장성을 높여주는 주요한 요소다. 별도의 조작 없이 작동하는 자연 조명이 되어주고, 철마다 바뀌는 그림 액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런 자연의 변화는 전혀 다른 주거환경을 제공해서 공간을 확장시킨다. 즉 계절 따라 다른 공간에 사는 경험을 제공해서 10평의 오피스텔이면 4(계절)×10(평) = 40평에 사는 것과 진배없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자신이 가장 애정을 가지는 무언가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물론 ‘무언가’는 움직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오디오나 TV, 의자나 장식장 심지어 작은 스탠드라도 상관없다.
방이 두개라면 아무리 작은 방이라도 방 하나는 오로지 오디오 룸으로만 구성한다든가 작은 스탠드를 가장 눈이 많이 가는 위치에 두고 그 스탠드만을 위한 가구 배치를 구상하는 식이다. 자금과 여건이 여의치 않을수록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사람의 눈과 뇌는 충격적이나 감동적인 장면이나 순간을 오래 기억한다. 나머지는 엑스트라 보조에 불과하다.
돈이 없을 수록 백화점식 진열방식을 피해야 한다. 백화점 쇼핑을 다녀오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매장이나 코너가 없다. 시선이 분산되고 전체가 한 덩어리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허름한 구상가지역에 매력적인 단품 매장을 꾸미면 주변 노점조차 거슬리지 않을 뿐더러 매장을 돋보이게 한다.

다소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작은 방 하나를 오디오룸으로 할애한다면 적어도 음악을 듣는 동안 전 세계 공연장를 돌아다니며 오케스트라 연주을 듣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쇼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끼는 희귀한 스탠드 하나만 올려진 테이블을 둔다고 해보자. 거기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든 아니면 책을 읽든 새로운 장소에 도착한 여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감히 면적으로 따질 수도 없다. 확장과 변화를 넘어 공간 이동을 하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화분이나 어항을 들이는 방법도 권할 만하다. 새 잎이 나고 꽃이 피는 화초의 생장을 통해 실내에서도 철마다 바뀌는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어항에 작은 생태계를 조성해 놓으면 정해진 공간 안에 새로운 세계, 별도의 공간 하나를 더 들여놓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공간의 확장과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도시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인공적인 조형물에 갇혀 사는 삶이다.
고정된 물리적 공간과 조건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생각을 전환하고, 공유하는 주변환경이나 자연을 활용하는 삶의 지혜로 어느정도 가능해진다.
오래전 일부러 전세만을 살던 그는 소유보다 자유에 더 가치를 두고, 자연에 더 친숙해지고자 서울 외곽으로 이사할 계획을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생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몸이 머무는 공간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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