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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06. 2021

다시 생각이다 1

“의뢰하고 싶은데 예산이 적어서….”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죄송해서…”
드물지 않게 듣게 되는 말이다.
음악용어 중에 ‘후크 (Hook)’라는 단어가 있다. 갈고리, 낚시바늘의 원뜻에서 파생된 말인데 노래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짧은 후렴구 같은 것이다. 전체 가사는 모르면서 저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구절이 대개 후크라고 보면 된다.
아이유의 ‘잔소리’에서 “그만하자…그만하자” 같은 구절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내게 누군가의 “….싶은데 ….해서”는 이런 후크다.

한때 인테리어 잡지에 내 작업이 자주 소개되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뷰에 일체 응하지 않게 된 이유도 이런 후크의 영향이다.
어느날 한 다리 건너 알던 분이 자신의 매장 오픈식에서 “소개받아서 부탁하고 싶었는데 잡지에 실린 걸 보니… 그런 대단한 사람이면 내 예산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우리만큼 양심적인 회사도 없다고 자부하던 터였는데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후로 일체의 인터뷰와 기사화를 거부한 지가 10년쯤 된 것 같다.
내가 프로젝트를 맡는 기준의 첫번째는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이다. 자신이 없으면 주저없이 거절한다. 그게 늘 문제이기는 하다.

디자이너는 결국 감각과 아이디어를 파는 사람이다.
감각을 벼르고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체득한 이 자산이 전부다. 파일이나 도면으로 전달되는 결과물은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더 화려하고 실감나게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원천 소스에 해당하는 이러한 지적 자산이 요체요 핵심인 것이다.
몇 년 전 리모델링 했던 건물이 있다. 완공 후 건물주가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
“교수님 전에 보여주셨던 그림 제가 가져도 될까요?”
“어…? 기획안이나 도면은 전학드린 걸로 아는데…”
“아뇨. 초기 미팅에서 그려 주셨던 그 스케치 그림들 있잖습니까. 그거…”
“뭐하시게요?”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려고요… 그게 진짜잖습니까. 제가 그 정도는 압니다.”

얼마전 작업을 마친 사옥의 대표는 건물 진입하는 입구 벽에 내 이름을 새기겠다고 해서 손사래를 쳤다. 결국 내가 건네 줬던 꼬깃한 스케치 그림들은 액자에 걸려있고, 사옥 입구에 명판은 만들지 않았다.
그 분들은 뵐 때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지만 나 역시 그 분들을 남다른 반가움과 감사함으로 대한다. 진짜가 뭔지 알고 추구하는 사람, 진심 그대로를 표현할 줄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안다.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 가르치는 행복은 배우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공부의 적기다.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늘 있다. 내 경험상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 배우는 효율적인 학습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만이 인간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자연에서 심지어 무심코 쌓아놓은 돌무더기에서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레거시’ ‘꼰대’라는 말도 결국은 배우고 깨닫는 걸 멈췄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거의 유산에 기대 남을 가르치려 들 때 듣게 되는 비아냥이다. 성장을 멈추고 변화를 거부할 때 세상과 나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세월의 더께가 두터워질수록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절감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진 게 있다면 이런 의문부호가 따라다닌다는 정도다.
‘기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지? 뭘 할 수 있을까?’
공자도 스티브 잡스도 안되는 필부인 나로서는 이런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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