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Nov 06. 2021

알면서 모르는 이야기

꽤 넓은 책상을 쓰는데 늘 산만하고 잡다한 물건들이 널려 있다. 나는 지금 대리석처럼 보이는 샘플을 보고있다.
몇 년전 인테리어 전시회장의 수입 자재부스에서 얻어 온 것이다. 내 현장에 써 보지는 않았다. 일단 천연 대리석이나 인조대리석보다 비싸다. 그런데 천연대리석은 아니다.
흔히 주방 상판에 쓰이는 인조대리석의 한 종류다. 그런데 이 샘플이 탐났던 것은 재료가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밝은 회색의 석회석 성분에 박힌 투명하거나 컬러가 있는 파편은 폐유리병이다. 이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문양 예컨대 알록달록 무지개 빛이 나는 대리석 샘플을 받고 싶었는데 스페인인인지 이탈리아인인지 모르는 담당자가 곤란하다고 했다. 여분이 없다고 했던 것 같다.

무지개 빛 샘플은 여러 컬러의 병을 부숴 만든 파편이 박혀있었다. 얼핏 폐유리병이 쓰였다면 더 싸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생산과정을 추정해보면 알 수 있다.
1. 폐유리병을 수거한다.
2. 씻어서 컬러별로 분류를 한다.
3. 적당한 크기로 부순다.
4. 믹서기에 혼합해 판형으로 만든다.
5. 손에 베이지 않게 면을 가공한다.
6. 규격에 맞춰 재단한다.
최초 원재료의 단가는 낮았을지 모르지만 사람 손이 반드시 가야하는 공정이 들어간다.
유리병의 수거와 세척 그리고 분류는 아직 기계로 할 수 없다. 특히나 목이 좁은 유리병은 접시처럼 세척기를 쓸 수 없다. 분류 작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기에 특수한 면 가공이 들어갔을 것이다. 콘크리트 성분과 유리성분은 균일한 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단면이 드러나선 안된다. 이질적이고 매끈한 유리를 일체화시킬 수 있는 접착성분도 필요할 지 모른다.
반면 단점도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이어 붙이기 힘들것이란 예상을 알 수 있다. 재료와 문양이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문양이지만 불규칙하고 이질적인 재료가 섞여있어 아무리 이은 선을 깔끔하게 마감하더라도 절단면이 두드러져 보일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벽지 회사의 기술력과 디자인 능력은 대단하다. 아무리 다양한 패턴과 컬러라도 이어붙이면 한 면으로 보인다.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인테리어 시공에 있어 자재비와 인건비의 비율은 6 : 4 정도로 자재비의 비중이 높았다.
지금은 이 비율이 역전된 지 오래다. 심하면 3 : 7정도로 인건비 비중이 높아진 분야도 있다.
그렇다보니 폐유리병을 섞어 쓴 인조대리석이 더 비싼 것이다. 이는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재활용제품이 아직까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하며 기존에 쓰였던 자재와 형태를 활용하는데도 새로 사거나 만드는 것보다 저렴하지 않은 경우는 흔하다. 의뢰인에게 이것을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다. 지구 환경과 기후변화는 너무 먼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은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데 무심하게 지나쳤을 뿐이란 게 중요하다.
우리가 흔하게 입는 청바지를 예로 들 수 있다. 일반적인 청바지는 메이커마다 가격 차이가 있겠지만 같은 메이커 같은 디자인에서도 ‘와셔블(Washable)’ 즉 한번 더 세탁한 청바지는 더 비싸다. 공정 하나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 닳게 하고 헌 옷처럼 보이게 하는 데 비싼 돈을 치르는 것이다.
이보다 비싼 청바지는 워셔블 공정에 구멍을 내거나 찢어 놓은 청바지다. 워셔블은 약품과 가볍고 작은 돌을 넣어 큰 드럼세탁기처럼 생긴 기계에 돌리면 된다. 그런데 구멍을 뚫고 군데군데 찢는 것은 수작업이다. 생산단가가 더 높아지는 이유다.
아무리 비싼 기성품 정장도 장인(Tailor)의 맞춤정장보다는 싸다.

자동화 기계와 로봇이 일반화될 수록 사람의 손길이 더 각광받고 귀하게 대접받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어느 드라마에서 재벌2세가 자신의 트레이닝복을 두고 한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이라는 대사가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그 한땀 한땀 수 놓은 솜씨가 재봉틀의 박은 수보다 더 정확하고 균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인의 수작업이 그 트레이닝 복의 가치를 높이고 비싸게 만든 것이다.

굳이 기술자의 손길이 아니어도 된다. 오랜 세월동안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아서 그 값어치가 빛나는 것들이 있다.
시골 할머니 댁에 놓여있던 뒤주나 이불장 같은 것은 금방 옻칠한 신품보다 훨씬 비싸고 귀하게 대접받는다. 당시 그 분들이 매일 닦았던 한옥의 오래된 대청 마루판은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고재다. 동백기름을 먹이고 닦고 쓸었던 흔적이 그 가치를 더해 주는 것이다.
벌써 10년은 됐을 것이다.  내가 정말 큰 맘먹고 샀던 옅은 브라운 컬러의 가죽 점퍼가 있다. 세탁소에 맡긴 적이 없다. 꼬질꼬질 모서리가 닳고 까맣게 된 손때를 지우기 싫어서다. 믿거나 말거나…..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생각이다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