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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07. 2021

세상을 밝히는 빛 2

퇴근 후 우리집에서 늘 똑같은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주방, 식탁, 거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사람이 없는 곳이면 조명을 끄고 다니는 나와 지나간 자리마다 조명을 켜두는 것으로 흔적을 남기는 다른 식구들 간의 숨바꼭질이다.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천장등이 안켜진 방은 내 방이다. 나는 천장등을 왠만해서는 켜지않는다. 책상 스탠드등을 주로 켜고 조도를 높일 때는 장식장을 비추는 국소 조명을 활용한다. 스탠드등도 아래를 향하지 않고 천정이나 벽을 비추게 해둔다.
직접조명이 아닌 간접조명인 셈이다. 가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우리는 빛과 어둠 속을 오가며 산다. 그런데 강렬한 빛에 이끌리고 눈부심을 참아가면서 살아가려는 것은 아닐까. 그 빛이 금전이거나 사상, 이념, 종교 그리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주위가 밝다면 가령 내가 머무는 공간을 이루는 바닥과 벽, 천장이 환하면 훨씬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포근한 빛에 안겨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끼니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부, 나를 숨막히게 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사상과 이념, 종교 그리고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한 행복이 없을 것 같다.
그것들이 푸르게 빛나는 지구처럼, 수만년 과거로부터 날아온 별빛처럼 태양빛을 받아 나를 비춰줬으면 좋겠다. 그 빛은 반사된 것이고 눈부심까지 거세한 고맙고 사랑스러운 빛이다.

나는 태양이나 광원에만 집착해 눈 먼 사람들도 봤고, 스스로 빛이 되려는 사람도 본다.
나는 파란 눈을 가진 것 아닌데 밝은 빛에 쉽사리 눈이 피곤해지는 편이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중에서 가장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안경이다. 광선이 강하면 저절로 어두워지는 변색렌즈를 써서 그렇다. 당연히 실내에서는 은은하고 편안한 밝기를 유지한다. 직접 쬐는 광선을 피하는 것이다.
스탠드 갓등나 국소조명 주변으로 새어나는 불빛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그런 가로등과 새어나오는 빛들로 채워지면 불안하지도 넘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이 있다. 잠자리에 들어서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천장에서 내려쬐는 천장등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래전 내가 병원을 설계하면서 입원실 천장등을 전부 간접등으로 교체했다. 원장인지 수간호사였는지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들은 밝은 것이 좋을 지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는 천장만 쳐다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상태로 몇날 며칠을 지내신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방치된 사람들은 빛을 바로 쳐다볼 수 없다. 이미 약할 대로 약해져 있고 지칠만큼 지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빛, 뜨거운 열기를 품고 발광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주변의 밝은 환경, 눈부심을 없애주는 사람들이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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