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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13. 2021

요양차

어제 저녁에 증세가 왔다. 가슴이 갑갑하고 머리 속에 안개가 자욱하다. 아는 고질병이지만 치료시기를 놓치면 안된다. 이번에는 큰 병원(?)을 찾기로 했다.

큰 섬 울릉도로 간다. 9월 중순께부터 대형 크루즈선이 다닌다. 결항 걱정을 안해도 된다. 해거름에 포항역에 내렸다. 죽도시장으로 왔다. 물회를 시켰다. 막걸리가 딱인데 아쉽게도 없다.
"사장님 어떤 소주가 제일 잘 나가나요?"
"아무래도 이거죠"
지역소주 참을 시켰다. '참이슬'이 아니다. '깨끗한 아침, 참'이다.
말이 물회지 굳이 원한다면 물은 부어 먹어야한다. 나는 그냥 찰고추장 그대로 쓱쓱 비빈다. 아무래도 깨를 뿌리다 쏟은 게 분명하다. 깨 한 무더기, 회 아래 썬 배가 또 한 무더기 숨겨져 있다.

조강지처 공기밥은 소박을 놓고 아삭하고 달짝하고 싱싱한 살맛의 회무침에 마음을 뺏긴다.
소주 1잔에 물회 한 젓가락이 극락이다. 모시 조개국은 선녀의 속살처럼 뽀얗고 부드럽기 그지없다. 가히 일품이다.  술 한잔에 취하고 물회 한사발에 빠졌다가 모시조개국에 깨기를 반복한다. 5잔 째. 소주 한병이 7잔 반인가 그렇다.
이쯤되면  쾌세라 세라다. 배는 밤11시에 뜨고 9시부터 승선이 가능하다. 셔틀 버스가 죽도시장에도 들른다. 시간 여유가 있어 영일만 해변을 둘러볼까 했는데 주인장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찌 될 지 모르겠다. 어차피 느닷없이 떠난 건데 안되면 포항에서 1박이지 뭐.

죽도시장에는 횟집만 200개가 넘는다고 했다. 내가 이 집을 찾은 건 맛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메뉴가 딱 두개다. 회밥, 물회 얼마나 심플한가. 국산자동차 회사의 싸구려 마켓팅처럼 옵션이 다양하지 않다. 다양한 메뉴와 횟감이 광어, 우럭, 도다리, 오징어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는 여느 식당과 다르다.
휘황찬란한 조명에 넓다란 홀로 유혹하지도 않는다. 나는 사람도 타고 난 대로, 생겨 먹은대로, 가진 대로 사는 사람이 좋다.

좌식테이블 여덟개가 고작인 조그마한 식당이다. 주인장은 정갈한 음식솜씨만큼 보살마냥 넉넉하고 정겹다.
"어째 맛이 괜찮아예?"
"하모예. 잘 묵었습니더. 배가 참 다네예"
"글치예. 설탕 안넣고 배맛입니더"
"압니더. 맛있데예"
"고맙십니더. 근데 오데서 오싰습니꺼?"
"요짝인데. 서울에서 왔심더"
"집이 포항이라예?"
"고향은 경상돈데 사는 데는 서울입니더. 울릉도 갈라꼬예"
"어쩐지 그런가비다 했심니더. 아까 어떤 식사했던 엄마하고 딸도 울릉도 간다 카더라고요"
"예 저도 인자 차 타고 선착장 가야지예"
"요리 돌아가모 버스 옵니더 거서 타모 됩니더"
"예. 압니더. 고맙십니데이"
그러고보니 튿어진 야구모자, 깔깔이 야상을 겹쳐입은 모습이 무장공비 아니면 섬으로 들어가는 행색이다.
 
인사는 그리 해놓고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도 셔틀버스가 도착한다.
영일대 해수욕장은 부산 해운대의 축소판이다. 백사장은 해운대보다 이곳이 나는 더 좋다. 왠지 아직은 덜 밟힌 느낌이랄까.  역시 지나다니는 행인은 젊은 사람들이다.
"어 저기는 안가봤네. 니는 가봤나"
"어. 가봤지. 별론데... 물은 좋다"
"와~자들 이쁘네 진짜네. 뭐 그래도... 담에 오지 뭐"
날씨는 차가워도 젊음은 뜨겁다.

셔틀버스가 온다는 장소로 간다. 편의점에 들러 이곳이 맞는지 물어본다. 맞단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이 가까이 되자 스카프를 이쁘게 동여맨 꼬맹이 가족, 산행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여기가 확실하다. 영일만 신항으로 간다.
내게도 영일만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놈은 서울 산다. 당췌 도움이 안되는 놈이다. 듣고있냐 박뭐시기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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