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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16. 2021

소금처럼

울릉도

35년이면 섬아낙이 됐어도 벌써 됐을 세월인데 어쩐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싶었다.

훠이적 훠이적 동네 백수마냥 거닐다 늘어놓은 매대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을 뿐인데 공연히 가게 딸린 방에 누워있던 주인장이 몸을 일으키게 했다.
"뭐 찾으십니까?"
"그냥 둘러보는 겁니다."
"뭐 찾으세요. 물건 좋습니다. 선물하시려고요?"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두어시간이 남았다. 배 끊긴 섬의 나름 중심가는 일찌감치 파한 파시 풍경이다.
울릉도는 위치상으로 강원도와 가깝다. 가장 짧은 코스는 울릉도-후포항인데 후포가 속한 경북 울진도 1962년까지 강원도였다. 그녀는 경기도 사람이다. 강원도 출신 경찰이었던 남편을 따라 흘러들어왔다. 그녀가 서른여덟 되던 해였다.
"그럼 자녀들은 어떻게 두셨는데요? 같이 데리고 들어오셨겠네"
"아뇨. 오남맨데... 그때 울릉도는 그때만 해도 지금같지 않아서...... 육지 친정에서 엄마가 다 키워줬지. 친정엄마가 여기 오면 우셨어. 배끊기면 오도가도 못하는 이런데 산다고"
"에이 무슨.... 금술이 좋으셨구만. 오남매를 둘 정도면..... 그러니까 한번도 안떨어지고 남편따라 다니셨구나. 그런데 어르신이 왜 고향도 아닌 울릉도에 자리를 잡자고 하셨을까? 전근 다니면서도..."
"호호호 아휴 금술은…몰라. 그러게 여기가 공기도 좋고 그렇다면서…. 아휴 그 경찰 월급 얼마돼요. 애들은 많고 그래서 한 오년은 품을 팔았어 오징도 말리고 나물도…. 옛날 여기 지천으로 깔린 게 나물이었으니까. 그러다 오징어 공장 한 게 이제 삼십년째네”
“용하네. 어째 육지사람이 섬에서 장사하기 힘들었을텐데…. 그럼 올해 연세가?”
“아휴 말도 말아요. 그때는….. 여기 사람들, 사람들은 다 좋은데 왜 다 동네마다 텃세라는 게 있잖아요. 또 섬이고... 옛날에는 나를 공판장 깡패라고 했다니까 호호호…. 그게 오징어라는 게 생물을 말리려면…… …..  그래 어떻게 해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 우리 아저씨하고 여덟살 차이거든 그래 올해 여든하나지. 그 양반도 쉰 넘어서 경찰 그만두고 경운기 몰고 다니면서 돕고…”
“그럼 올해 일흔 일흔 셋인데...   와 곱다. 그리 안뵀는데…. 젊습니다. 엄청 젊어보이시네”
“호호호 고마워요. 그러잖아도 가끔 경로당 가면 막내라서 잔심부름하고 식사 챙겨드려야 되요. 내가 막내라니까. 한참 막내. 그래서....”

반평생을 산 울릉도의 속살과 그녀의 자부심인 오징어 이야기, 가볍고 예쁜 치매가 온 남편과 육지에 사는 자식 자랑, 얼마전에 통화한 막내와의 이야기까지 듣다 보니 버스 하나는 건너 뛰었다.
“아무튼 그럼 이게 제일 좋은 거라니까. 이걸로 줘요. 택배로 부치게…. 에헤 이거 동네 마실 나왔다가 또…”
“그리고 가만보자 이거 오징어 하나 드릴 테니까…. 잠깐만 아니면 호박엿을… 이게 진짜야. 이건 육지에서 만든거고….. “
“괜찮아요. 이 봐봐 가방도 없이 홀홀 다니는데....  그거야 택배로 부치면 되는거지만…. 아니 됐어요. 됐다니까”
기어이 호박엿 한 봉지를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줬다.
“이렇게 들고 가면 되지. 각시랑 5~6월에 와요. 이거는 다 말린 거거든 그때 진짜 나물 많이 나와. 생으로….. 오징어도 많이 나고….. 각시랑 와 혼자 오지말고.”
“하하하 예…. 아무튼 오래 오래 장사하세요. 건강해서 오래 하셔야지. 그래야 또 뵙지.”

그렇게 폼 안나게 비닐봉지를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문득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던 택배비를 줬는지 안줬는지 기억이 없다. 다시 돌아갔다.
“근데 아까 제가 택배비 따로 드렸어요?”
“호호호 안그래도 얘기하느라…. 호호호 안받았다 했는데……. 하이고 그렇다고 또 돌아왔어요?….. 내 정신이...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가지고…. 고마워요”
“뭘요. 그래 암만 생각해도 그건 따로 준다고, 그래라고만 했지... 나도 현금 꺼낸 기억이 없더라고….”
그렇게 오늘 울릉도 온 이래 가장 큰 돈을 썼다. 내가 돈이 없지 충동심은 살아있다.

어디에 옮기지 못하고 기억으로만 남겨둬야 할 내밀한 이야기거리가 쌓인다. 소금처럼 몇년 묵혀뒀다 간수빠지면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사는 모습은 어딜가나 닮았다. 지금보다10년 전 울릉도는 좋았고,  20년, 30년 전으로 갈 수록 더 좋았다. 앞으로 일주도로 정비가 끝나고, 공항이 들어서는10년 그리고 20, 30년이 지날수록 나빠질 일만 남았다.
물론 섬을 좋아하는 육지사람 내 기준이고, 옛날 바다를 그리워하는 섬노인들의 아쉬움이다.
지금의 울릉도를 기억해둘 일이다. 몇 대를 걸쳐 내려온 토박이와 반평생을 살며 작은 섬이 되어버린 당신들이 들려주는 울릉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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