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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16. 2021

오해

울릉도

"아 참 와그라십니까. 문을 자꾸 열었다 닫았다..... 어 그라고보이 어제 탄 손님이시네"
하필 어제의 색스폰 버스기사다.

장사꾼은 마수걸이가 중요하다.  여행객은 아침 첫차 탔을 때 기사가 중요한데 이렇게 또 만나게 되다니. 도대체 울릉도 버스기사가 몇 명인거야?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 정면 승부다.
"사진 찍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사진!" 말 끄트머리의 '사진'에는 힘이 실렸다.
"아.... 예. 그란다고...그렇습니까"
후퇴하는 기미가 보인다. 기회다. 이럴 때 밀어부쳐야 한다.
"그런데 기사님...." 운전석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며 말을 붙인다. 어느덧 둘이서 수다를 떠느라 내릴 곳을 지나칠 뻔 했다.

이틀째다. 이틀정도 됐으면 이제 현지인이 되야 한다는게 나의 여행 수칙이다.
첫날은 현지 적응도 해야되고 탐색전도 필요하니 몸가짐을 조신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겪어보니 울릉도에서는 버스기사분들과 친구가 되면 좋다. 질 높은 정보와 현지 소식이 빠삭하다. 거의 대부분 육지 사람이다. 가족은 육지에 두고 온 경우가 많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1년을 넘기자마자 떠난다. 애환도 재미도 각별한 동네가 울릉도란다.

오늘까지 얼굴 마주치면 아는 체 하고 수다를 시작하는 버스 기사가 네 사람, 이제 게스트 하우스 할머니와는 마주칠까봐 무섭다. 눈에 띄면 족히 30분이다. 며느리들 취향과 대학 전공까지 다 안다.
함바식당 주인 내외와는 아침 식사후 머리 맞대고 당일 스케쥴을 같이 논의하는 사이다. "거긴 1800계단 ... 아니 이쪽이 낫지. 여기로 내려와서..."  
오늘 저녁 식사를 한 식당주인 어르신 내외와는 사위 험담하는 사이가 됐다. 아무래도 나는 어르신들과 궁합이 잘 맞다.

친구가 된 그 분들 삶과 사연을 하자면 길어도 너무 길다.  내일 새벽에 줌 회의가 있다. 오늘은 이곳에서 사귀게 된 여인과의 대화로 끝맺으려 한다.

모름지기 나처럼 마구잡이 여행을 하는 사람은 추레한 복장과 낮은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무례하지 않은 넉살을 장착하는 게 중요하다. 원주민의 경계를 허물고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다. 촌에 메이커 아웃도어 입고, 허여멀건 깔쌈한 도회지 사람 티 내고 다녀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그래선지 나는 군자가 못되는가보다. 옛부터 '군자는 대로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도무문'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나는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디니는 걸 즐기고 쪽문이 있으면 기웃거리고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여행길에서 특히 증세가 심하다. 그래서 난감한 상황을 자초하고 사사 고생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오늘은 크루즈도 결항할 정도로 파고도 높고 바람은 거칠고 추운 날씨였다.
바다 쪽은 포기하고 실내와 분지로 코스를 잡았다. 오전에는 휘이 전시관과 기념관을 돌아보고 점심은 거른 채 서둘러 박나래 아니 나리분지로 향했다.
둘레길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서인지 산행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해안으로 직접 내려가는 다른 등반로를 선택했다.
거의 다 내려와 마을이 나타났을 즈음 또 그 병이 도졌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과 모험정신인데 고질적인 호승심과 샛길선호증이다. 큰길 따라 계속 내렸갔으면 됐는데 길 옆 풀섶에 한 사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샛길이 보였다. 주저하지도 않고 샛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곧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왔다. 지그재그인데도 너무 가파른 길이다. 디딜 때마다 발가락이 신발 앞창으로 쏠린다. 허벅지 근육을 키우기 위한 오르막 전용 길이었나 보다.
그럭저럭 내려 왔다. 왠걸 그랬더니 일주도로와 곧장 맞닿았다.  좌우 도로변 어디에도 정류장이 있을만한 마을이 안보인다. 울릉도 지도를 펼쳐본다. 분명 큰 길을 따라왔으면 추산마을로 내려 왔을텐데 보이질 않는다.
샛길로 내려오다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 온 것이 분명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왼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일주도로의 바다쪽은 비가 온 것처럼 젖어있다. 파고가 높아 바닷물이 덮친 것이다. 걷는 내내 바닷물 분무기 샤워를 한다. 맛은 짭짤하고 안경은 버스 차창처럼 뿌옇다.
야상 오른쪽 주머니에 있던 책과 왼쪽 주머니의 우산을 서로 바꾼다. 책이 젖으면 안된다.
산행을 배낭없이 다녔지만 실은 작은 배낭 하나 짊어진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리지널 미군야상은 무겁다. 그런데 주머니마다 여분의 밧데리 2개, 스마트 폰, 다용도 칼(레더맨), 우산, 책 한 권을 넣고 다녔으니 작은 배낭 무게다.

한참 걷다보니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작업자가 보인다.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면...."
"양쪽 다 있는데.... 그런데 지금 여기가 딱 중간이라" 그러니까 산에서 내려온 길에서 오른쯕으로 조금만 걸었으면 정류장이었던 것이다. 아마 굽어진 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상관없다. 깨끗한 바다물의 분무를 맞으면서 걷는 경험은 별로 없다. 게다가 용트림하는 파도쇼를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도 행운이다.

한참 걷다보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뽑혀져 길가에 누워있는 안내판을 보니 평리라고 씌여있다. 정류장 led 전광판이 공란이다. 버스가 오려면 한참 남았다는 의미다. 시간표를 펼쳐본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분다. 정류장에 피신해 있느니 건너편 마을 탐방에 나선다. 아무리 산보하듯 걸었는데 몇 가구 되지 않아  금방 끝나버린다. 오늘 많이도 걷는다.
다시 길을 건너 정류장으로 가려는데 도로변 집들 중 깨끗한 집의 알미늄샤시 미닫이 문이 열린다. 문을 열면 바로 도로다. 한 2m도 안 띄어져 있다.
어르신 한 분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밖을 내다본다. 바람이 워낙 세서 그런가 보다. 다가가서 인사를 드린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바람 떄문에 걱정되서 내다보시는 거예요?"
"예. 무슨 바람이. 바람이....아이고 추버라 추버라. 그런데 여기 사람입니까? 어데 가는데 안추버요?"
"괜찮습니다. 버스 기다리는 중입니다. 할머니 바람 때문에 그러십니까?"
"예. 바람에 세서.... 그런데 이리 추븐데.... 얼마나 기다리야 되는데요? 금방 오는기라요?"
"아뇨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얼른 들어가세요.. 바람이 찹니다."
"아이고 우짜꼬 커피라도 한잔 드리야 되는데.... 따신 커피 한잔 할랍니까? 추븐데 우째 기다릴라고....."
"괜찮습니다. 커피 마셨습니다..... 그럼 버스 올 때까지 들어가서 기다려도 될까요?"
"예. 어서 들어와요. 어서 "

할머니는 혼자 되신지 오래되셨다고 했다. 올해 여든넷이 되셨다. 슬하에 아들 둘 딸 둘, 2남2녀를 두셨는데 큰아들만 도동에 살고 다른 자식들은 육지에 나가 산다.
"그럼 할머니 이 동네 12가구 중에 할머니 말고 또 한 분 그렇게 두 분만 사신다는 겁니까?"
"12가구 살다가 다 가뿌고  인자 둘이 았어요?"
"아 할무이하고 ...."
"내하고 이 위에 할무이 한케하고 둘이 있어요"
"그럼 동네 주민 중에 두 분만 살아계시고 나머지 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죽어뿌고 인자 딸네집에 가뿌고.... 다 가뿟어요. 나(나이)가 많으이 다 할무이 다 죽고 다 어데 가뿌고 없어요"
"아이구야 그래요?
"내가 울릉도서러 나갖고(태어나서) 이때꺼정 살아가지고... 인자 죽으모 여서 죽어야지"
"그럼 자식한테 가있지. 여기 혼자 계시면..."
"아들이 요근처 살아요.."
"그래도 손주들도 있을 거 아닙니까? 보고 싶으실텐데...."
"손주들도 다 커서 다 시집 가뿌고 어데 가고 다 가뿌고 인자......좀 있시모 또 오겄지 뭐..."
"그래도 여기는 혼자 사시잖아요"
"예. 이 땅에 내 혼자 살아요. 혼자 살모 인자.... 추브모 손주가 오기나 딸이 오기나 하겄지. 할매 혼자 산다고...."
"그럼 할매는 몇남 몇녀신데? 자식들은...." 어느덧 나도 '할매'라고 부르고 있다.
'
"얼마 없어요. 몇 안되요. 둘이 딸 둘이하고 서이 너이 울릉도 요서는 큰아들 그기요 도동 거기 살고 육지 가가 둘이 살고...."
"많네. 뭐가 없어요. 2남2녀를 뒀는데.... 큰아들은 도동 살고.... 큰아들이 가끔 오겄네요"
어느덧 내가 아들이 돼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그래도 괜찮지요.호호... 없는 요량하모 괜찮지. 옛날 요량하모 아무것도 아이지..... 큰아들 그기 내 곁에... 그기 왔다 갔다 그라지.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시이 ... 나(나이)가 많은데... 흐흐"
"에헤 옛날 요량 하모 안돼지. 요새 아 하나씩만 낳고 그라는데...'
"그래 요새는 하나 놓고 두나 놓고 뭐 그리밖에 안놓대... 아효~~"
"그래도 할무이 편찮으시면 안되는데 이렇게 혼자 계셔서...."
"인자 아프모 죽으뿌모 좋지 아이코 인자 마... 죽는기 좋으니더 마. 고옵게 잘 가야지"
"에헤 또 무슨 소리를 그리 하십니까. 건강하셔야지.....근데 동네는 작은데 저쪽에 파출소가 크더라"
"저어짝 우로 올라가모 많이 있어.. 바닷가 요만 이래 작아가... 열몇 집 살다가... 저 가모 한집 저 가모 한집 있고 이래요.  울릉도는.... 육지도 가이 그럽디더"
"예. 뭐 그렇습니다. 저도 육지에서 안왔습니까. 저기..... ........"
"에이고....아침에 일찍 왔으며 내가 커피라도 타줐으낀데..... 자주 요 고향 사람들 들리모 할매 혼자 있다고 들리모 내가 커피 잘 타주요. 고맙잖아요. 내 혼자 있다고 들이다 보고... 요 공사 하는 사람들도 타주고 나모 "할매요 잘 무쓰요"카고 어데로 갔는고 흔적도 없어. 하하하"
"무슨 말씀을요. 오늘 아침에도 두잔이고 먹고 나왔어요. 그래도 우리 할무이 복 많이 받겠다."
"그래도 내가 잘 주니더. 가마 생각하모 아이고 고맙잰에요. 할매가 늙어 날로 잡아야 하는데...... 감사하죠 오늘 또 둘이 와가이고..... 행여 여기 또 지나가모 들어오소 . 커피라도 한 잔 잡숫소.... 살모 얼마 사능교. 너무 못됐게 하는 거보다. 좋크로 좋게.... 죽을 때 좋잖은교."

손주와 자식자랑으로 이야기가 깊어지는데 그리 더디 가던 시간이 빨라지는 것만 같다. 나는 벽시계를 힐끔거리는 횟수가 잦아진다.
"그런데 할무이 방은 따뜻합니까? 방은 항상 따뜻하게 해놓고 주무이소. 잘 챙겨드시고, 건강하셔야지요..
"방은 따세요. 잘 묵고...."
"근데 할무이 이가 .... 할무이 치아, 이가 차암 좋으시다. 고르고..."
"이 이기 다 본이가 아이라요. 호호호"
"하 그래 얼마나 이가 이쁘신지.... 장남이 효자네 효자. 이가 그리 좋아서 잘 드실 수 있으니까 더 건강하고 장수하실 수 있겠다. 요 울릉도에서 했어요?"
할머니 치아는 큰아들이 해줬다고 했다.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잘맞는 의사를 만나서 이가 잘됐다며 새색시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40분이 어떻게 지나간 지 모르게  지나갔다. 버스가 올 시간이다.
"할무이. 내 가야될거 같다. 내 더 이따가 갈 것 같으니까 요기 지나가모 또 올게요. 할무이 내 또 놀러오께"
"예예 또 오세예. 잘 놀다 꼭 오소."
"예.... 예.... 그럼요"
"아고 이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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