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신

by 문성훈

살다보면 우연찮은 만남에서 큰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그 날 밤이 그랬다.
꼼장어와 양념닭발이 맛있는 집이다. 언제나 붐비던 시간인데 그 날은 우리 둘 외에 아무도 없다. 초저녁에 손님이 몰려 힘들었다 한다. 같이 간 후배는 오랜 단골집이라 주인장과는 호형호제하는 막연한 사이다.

손님도 일찍 끊긴 터라 처음으로 주인장 부부와 넷이서 술잔을 기울이게 됐다.
안주인은 처음 해보는 장사인데 다행히 잘되는 편이라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 했고, 바깥 양반은 언제나처럼 점잖은 웃음에 말수가 적다. 이전에 출판사 일을 했다지.
으례 그 나이대에 이른 사람들의 화제가 그러하듯 자식 얘기로 흘러간다.
아들이 둘이라는데 큰아들은 군 복무중이고 작은 녀석은 중1이라하니 터울이 있는 형제다. 작은 녀석은 나 역시도 몇 번 봤었다. 그때마다 후배가 영재라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학원을 마치고 항상 식당에 들르게해서 근처에 있는 집일망정 엄마가 같이 들어간다 했다. 유일하게 그 날의 일로 얘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라 아무리 바빠도 꼭 지킨단다. 그렇게 간식거리를 챙겨주고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나온다.
고단한 하루 하루지만 주름지는 삶은 아닌듯 싶었다.

큰아들이 사춘기를 거칠고 심하게 앓았던 모양이다.
안주인이 불쑥 손목을 내민다. 어설픈 앙증맞은 하트문신이 새겨져 있다.
밝은 웃음과 소탈한 성격의 평범한 아줌마로선 의외였다.

"아들이 문신을 하고 싶다고 해서...."
질풍노도의 시기에 문신을 하겠다 한 모양이다.
엄마는
"그렇다면 내가 먼저 문신을 할테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 보고 결정해라"라고 했단다. 그 길로 홍대로 나가 낯설고 생경한 분위기에서 떨면서 한 문신이란다.

그날 이후 문신을 본 주변인과 손님들의 반응은 한결 같이
"그리 안봬는데 소싯적에 좀 노신(?) 모양입니다"였다.
큰 아들에게 주위 반응을 얘기해줬더니
"알았어..." 하고는 문신을 안했다며 까르르 웃는다.

늘상 그 큰아들에게 "니가 우리 스승이다"라고 말한다고도 했다.
첫 아이라 뭘 모르고 키웠는데 그 큰아들 덕에 부모 공부도 다시 하게 됐고(실제 부모학교도 다녔다고 한다) 반성도 많이
하게됐으니 그렇단다.

그렇게 제 자리로 돌아 온 지금은 누구보다 듬직하고 살가운 아들이란다. 지난주에는 강원도 양구로 면회도 다녀왔다고 자랑한다. 아버지에게도 스스럼 없는 친구같은 아들이라고 한다. 술이 달았다. 과음할 밖에.....

자식만 부모의 스승이었을까?

BandPhoto_2019_05_03_19_13_45.jpg
작가의 이전글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