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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19. 2021

줄리없다

'박구마'란 이름은 들어보지 않았겠지만 '어우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우동'의 본명이 "박구마'다.
갖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가 인기를 끈다. 드라마만큼이나 사극이 미치는 악영향도 있는데 어우동이 기생이었다는 오해 역시 그러하다.
박구마는 반가의 여식이었다. 비록 서자이긴 하나 왕손과 혼인한 그녀는 소박을 맞은 후 고관대작이나 그 자식들과 통정하며 한 시대를 희롱하다 교수형을 당했다.
출신은 관기나 기생이 아니었으나 이혼 이후 스스로 기녀행세를 하며 기방을 드나들었다는 기록이 그녀를 기생으로 오인하게 했다. 당대의 세력가들 품을 오가며 욕정도 풀고 세산의 이목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시를 짓고 서예도 곧잘 했다니 예인의 기질도 엿보인다
현대에 태어났다면 비참한 최후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건 세상을 호령하고도 남았을 여인이었다.

그런데 철저한 신분사회이자 유교국가에서  그것도 반듯한 양반가의 규수였던 그녀가 이처럼 기생을 자처하고 왕족과 고관대작 심지어 옛 시가 친척뻘인 남정네들과도 놀아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 의구심을 푸는 단서가 될 만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의 어미 '정귀덕'이다.
'정귀덕' 또한 노복과 간통하여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으니 음란한 색정이 모녀로 대물림한 것이다.
딸 어우동의 음탕한 행실을 유일하게 비호하고 후원해주던 어미 정귀덕은 후일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어우동의 하나뿐인 오빠 '박정근'은 어릴 적 무심코 주변에 "어미가 잠을 자는데 발이 4개였다."라는 말을 했다가 어미에게 모진 학대와 차별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미가 어우동만 끼고도는데 불만이 있던 차에 재산 상속마저 의붓아들보다 적은 것에 분개해 마침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외사촌과 작당해서 종을 시켜 제 어미를 청부살인한 것이다.
이 망조가 난 집안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야사가 아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 기억할 것은 왕족들 심지어 사촌 지간에도 스스럼없이 정사를 벌여 동서를 맺어줬던 어우동이었지만 정작 당시 왕인 성종의 품에는 안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성종과 통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간통죄가 아닌 더 중한 강상죄로 다스려 교수형에 처하게 한 인물이 성종이다.

화류계 출신으로 첫 남편과 이혼한 후 유부남인 남편의 직장 선배와 통정하고 고위직에 오른 남편 품에 안기기까지 성공적인 신분 상승을 한 현대판 어우동,
여러 남자와 동거하다 마침내 내연남을 시켜 동업자를 형사고소하게 했다는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재력가인 어미.
우연하게도 그녀 역시 1남 1녀로 오빠가 있다.

얼굴과 이름뿐만 아니라 학력과 신분까지 원래 제 것이 무엇인지 묘연한 여인. 정작 미술계에선 듣보잡이지만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회를 유치해 화제가 된 의외의 인물.
이제 그녀가 조선시대 어우동도 하지 못한 남편을 왕으로 만드는 과업을 이룰 수 있을런지 아니면 그 당시처럼 패가망신할 지 궁금하다.
그 간절함이 점장이를 찾고 부적을 새기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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