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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우리가 위험하다

칭기즈칸은 말이 죽였다. 평생 침상보다 말잔등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을 세계 정복자가 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이 아니라 야생마였다. 탕구르 정복을 앞두고 부족한 군마를 보충하기 위해 야생마 포획에 나섰다가 낙마한 부상이 도져 숨진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말은 순치시킨 야생마의 후손이다.  
나는 이 ‘순치(馴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짐승을 길들인다는 뜻인데 개나 고양이를 순치시킨다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그런데 말은 사람이 올라타야하니 순치를 시키는 것이다. '길들일 순(馴)'에 말(馬)이 들어있는 이유가 그것인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제 마음껏 초원을 내달려야 할 짐승을 사람의 지시에 따라 달리고 멈추고 방향을 전환하게 해야하니 순치를 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치는 ‘’목적한 바대로 점차 이르게 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칭기즈칸이 타고 있던 말을 들이받아 낙마하게 했던 야생마는 지금 멸종위기종으로 보호 받고 있는 몽골의 프로제발스키말일텐데 2000마리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초원은 야생마가 나고 자란 곳이었으며. 야생마로 인해 초원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순치되어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 있다. ‘기자’라는 종이다. 태생적으로 진실을 쫓아 현장을 내달리고 권력의 올가미에 포획되어 순치되기를 거부해야 하는 종이다.
그런데 마주가 제공하는 여물과 잠자리에 홀려 제 발로 마구간을 찾아가 순치된 야생마다.  그렇게 도축장에 가기 전까지  승마장을 맴돌거나 트랙을 따라 도는 경주마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니 눈가리개를 차고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왜 달리는 지도 모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수의 채찍에 근육을 놀릴 뿐인 것이다. 출전해서 좋은 기록을 남긴 날은 특별한 먹이와 깨끗한 잠자리가 제공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주를 위해 ‘단독’ ‘특종’을 만드려고 온갖 거짓과 과장, 왜곡까지 서슴치는 기자는 이제 완벽하게 권력과 생계에 순치된 애완마와 다를 바 없다.

야생성을 상실한 말처럼 현장성을 잃어버리고 초원의 풀을 뜯는 대신 조련사의 여물에 맛을 들인 기자에게 일푼의 연민도 가지 않는다. 스스로 순치되기를 자처했고 지금도 주인의 심기만 살피며 기꺼이 제 손으로 눈가리개를 쓰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일찌기 토마스 홉스는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다(homo homni lupus)’라고 했다.
야생상태 그대로의 인간은 본능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동물과 다를 바 없어서 욕망과 야만이 날뛰는 무정부 상태를 만든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늑대는 억울하다. 홉스가 누구처럼 ‘동물의 왕국’만 자주 봤어도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늑대의 세계는 그들 나름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개입만 없다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생존방식대로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오랜 투쟁과 논의를 거쳐 정치체계 그리고 제도와 법을 만들었다.
그 중 법은 현대국가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런데 이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거나 법 집행과 적용을 위임받은 자가 비리와 결탁하고 정의롭지 않다면 국가의 존립은 위태롭게 된다.
검사는 시민을 안녕을 지키는 파수병이어야 한다. 집을 지키는 반려견의 역할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개가 집을 뛰쳐나가 군집을 이루고 들개가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이었던 인간을 몰라보고 제 보스만 따라다니면서 온갖 악행을 일삼는 것이다. 고라니도 잡아먹고 양계장 습격은 물론이며 사람을 위협해서 해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체득한 비상한 두뇌와 사나운 이빨로 천적이 사라진 산과 들에서 맹수가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도심의 들개가 생태계를 교란하고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들개에게 먹이를 주는 인간들도 존재한다. 북한산 진입로 마을에서 들개가 된 개에게 사료를 공급하는 사람들과 들개에게 위협을 받는 주민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명심해야 한다. 들개는 결코 목줄과 입막개를 채운 반려견이 아니다. 언제 사료를 주는 손을 물어뜯을지 모르고 언제든지 우리의 어린 자녀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보스 명령에만 복종하고 제 종족만을 위하는 들개화된 검사들이 많다.
무소불위의 강력한 이빨과 여염집 담벼락도 무시로 뛰어넘을 수 있는 권한까지 가졌으니 실로 두렵다.
이미 제 무리에 위해가 된다 하여 한 가족을 사정없이 물어뜯었고 또다른 먹이감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흑곰 새끼를 강아지인 줄 알고 키웠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다. 장터에서 사 온 귀엽고 복슬한 까만 털의 강아지가 차츰 덩치도 커지고 이빨도 예사롭지 않아 수의사에게 의뢰해서야 흑곰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비근한 이야기가 돌고 있다. 미련하지만 충직한 줄로 착각했던 개가 파란 지붕 집을 뛰쳐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큰 덩치와 보스기질로 들개 무리를 장악했다.
그런데 이 들개 무리를 이끌며 온갖 패악을 부리던 보스 들개가 알고보니 멧돼지였던 것이다.

이 멧돼지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온데를 들이박는 중이다.
이 멧돼지 꽁무니를 쫒아다니는 패거리 중 하나는 사람을 패기까지 했다니 실로 걱정이다.
금수강산 한국 사회의 생태계를 들개 같은 검사들이 교란시킨다. 들개의 보스였던 멧돼지는 한 나라의 보스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현장을 누비며 진실을 전해야 할 기자들은 순치된 말이 되어 따뜻한 마구간에 머물며 여물만 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개와 친하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들개나 맷돼지와도 잘 어울리는 줄은 몰랐다. ‘동물의 왕국’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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