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Dec 16. 2021

신 적벽대전

짧은 독서편력에 정독해서 마음에 새긴 고전이 있다. ‘삼국지’ ‘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 ‘열하일기’ 등이 대표적이다.
한창 무당에 휘둘리던 정권시절에는 조선왕조에서 ‘선조’ ‘인조’편을, 이후에는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들로 나만의 해석을 곁들인 연재글을 실은 것이 내 페북 생활의 시초가 됐다.

내가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인물은?”이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답했을까?
나는 주저없이 ‘주유’와 황개’를 지목했을 것이다. “젊어서는 주유를 꿈꾸고, 늙어서는 황개를 닮고자 했을 겁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이 두 인물은 오나라 사람이다. 유비와 도원결의가 빛을 발하는 촉도 아니요 조조의 처세와 용인술을 배울 수 있는 위나라도 아니다. 삼국 중에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오나라다.
무릇 역사는 강자와 승자의 기록이자 작가의 시각이 반영된 영향이겠지만 당당히 중국 대륙을 삼분한 국가 중 한 나라가 오나라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주유는 대대로 명문가의 자손인데다 인물도 출중하고 예술에 조예도 깊었던 인물이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청와대 수석이었고, 아버지는 광역시 시장쯤 되는 집안의 와튼 스쿨을 나온 수재 정우성이다.
어디 그뿐인가 성품은 강직하면서도 온유해서 리더쉽이 출중하고 취미는 클래식 감상이었던 것이다.
후일 소패왕으로 불린 손책과 동갑내기 친구로  지략은 제갈량과 견주는데다 아랫 사람을 위하고 윗 사람은 성심으로 대하니 젊은 나이에 중책에 발탁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에 비하면 황개는 조실부모하고 장작을 패며 어렵게 자란 천상 무골인 장수였다.  
서책을 가까이하며 문무를 겸비했던 그는 손책을 도와 오나라를 세운 네 장수 즉, 4대천황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무공은 헤아릴 수 없으나 노구를 희생해 백척간두에 선 오나라를 구한 적벽대전에서 가장 빛난다.

영화의 영향인지 많은 사람들이 적벽대전을 도독이었던 주유와 천기를 읽은 제갈량의 합작품 정도로 알고 있는데 실은 주유의 지모와 황개의 희생이 이룬 전공으로 봐야한다.
강북을 평정한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양자강까지 밀고 들어왔을 때 오나라 조정은 항복과 결전으로 양분되었다.
요절한 형 손책의 당부대로 주유를 의지했던 손권은 주유의 주장을 받아들여 항전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주유가 내심 구상한 계략에는 의심 많은 조조에게 거짓 투항할 결정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그 임무를 자처한 인물이 구국 일념에 불타는 노장 황개다.
그의 결심을 확인한 총사령관 주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심어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노 장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장군께서 몸소 고육계(苦肉計)를 맡아주신다고 하니 오나라와 강동의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한 충절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후 황개는 주유에게 피투성이가 되고 살점이 뜯겨 뼈가 드러나는 곤장 세례를 받고 은밀히 조조 진영에 투항의사를 밝힌다.
이미 주유에게 처절하게 능욕당한 황개의 처지를 알고 있던 조조는 아무런 의심없이 반색하며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전갈을 보낸다.
주유의 계략은 치밀했다. 책사 방통을 조조에게 보내 연환계(連環計)를 쓰게 해서 배들을 쇠사슬에 묶게 한 후 유황과 염초를 가득 실은 황개의 투항선 20척에 불을 붙여 조조의 선단으로 돌진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기다리던 동남풍까지 도와주니 주유의 화공은 역사에 남을 엄청난 전공을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적벽대전의 신화는 실로 오나라의 대들보 주유와 노장 황개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서른 여섯의 짧은 생을 마감한 주유는 ‘주유가 오래 살았으면 삼국지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대단한 지략과 용병술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다.
황개는 용모는 엄숙하고 굳세며, 병사가 마음을 다해 따르고 공무에 결단력이 있어, 일이 지체되는 게 없었느니, 모든 이가 그를 사모하였다고 한다.

운이 틔여 비교적 젊은 나이에 거대 여당의 대표를 맡았으나 일찌감치 정신은 노회했고 잔꾀와 궤변만 배우고 익힌 이준석과
젊은 날 뇌물에 맛들인 이후 여든을 넘긴 지금에도 여야 정치권 주변을 맴돌며 일신의 안위만을 도모하는 김종인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찹하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들려했던 이준석의 얕은 술수가 통할리 없다.
결코 이준석이 젊고 건강한 미래세대를 대표할 수 없으며 김종인은 죽어서도 조부 김병로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주유에 버금갈 젊은 인재와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나라를 위하는 황개같은 원로가 나타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21세기에 사람백정이 주군 행세를 하며 대통령 자리를 넘보고(나는 이를 황건적에 빗대 '윤건적의 난'이라 부르겠다), 검사가 죄를 만들고 면죄부를 남발하는 한국이라지만(난세에 환관의 득세가 그러했지만 종국에는 죽음을 면치못한다)
면면히 이어온 한반도 오천년 역사가, 후손을 어여삐 여기는 선조들이 이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무식하고 천박한 윤두령을 앞세운 도적떼의 준동, '윤건적의 난'부터 제압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위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