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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차말고 책 한권 하실래요

이제는 다른 곳으로 부임하셨지만 내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은 쿨하고 유머러스한 분이셨다.

평소의 당신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인상적인 두 장면을 기억한다.
멀리서 안색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화가 나셨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을 때가 한 번 있었고, 야단치시는거구나 느꼈던 적이 또 한번 있었다.
화가 나셨을 때는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 4년이 지난 부활절 강론이었는데 이렇게 서두를 꺼내셨다.
"욕을 하게 될 것만 같거나 화가 나서 말이 옆길로 샐 우려가 있을 때에만 원고를 써오는데, 오늘은 원고를 써 왔습니다"
두고 읽어도 좋을 명문이라서 녹취해서 필사해뒀다.

이건 혼내시는거다 라고 느꼈을 때는 한 편의 동영상으로 강론을 대신한 날이었다.
“오늘은 영상으로 제 얘기를 대신하겠습니다” 전에는 몰랐던 천장 대형 스크린이 십자가를 가리며 내려왔다.
벤치에서 신부님과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주 내용이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대사는 이것이다.
“신부님. 왜 신부님은 정치 얘기를 하십니까? 불편해하는 신자들이 많아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예수님은 정치적인 분이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정치적인 분이셨는지 알아듣기 쉽고 어르신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영상이었다.

“예수는 정치범으로 처형당하셨고, 인간의 삶에 정치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기에 신학을 하는 사람은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당당히 밝히는 신학자가 있다. 김근수 선생이다.
감사하게도 인연이 닿은 분들이 책을 보내주신다. 김근수선생도 그 분들 중 한 분이다. 그 어떤 책보다 정성 들여 정독한다.
그런데 그 책들을 소개하거나 서평을 올릴 엄두를 못낸다. 문재가 부족하고 소견도 짧다는 걸 내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언급함으로써 작가나 책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서 그렇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도서를 선정하는데 ‘성경’을 추천한 후배가 있었다.
1년 정도 장기간으로 시도해보자는 것이었다 나이롱 신자인 나는 성경을 통독해보지 못했기에 내심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여러가지 사유로 무산됐다. 그런데 김근수 선생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내 생각이 섣부른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전 세계 압도적인 1위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성경은 한 문장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불경도 그러할 것이고, 가장 짧은 경전인 코란도 물론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독해해도 부족할 성경인데 1년이라니, 터무니없는 시도였다.
또한 그걸 재확인해 준 분이 김근수 선생이고 그의 책들이다.

아마 다른 경로였거나 내가 골랐다면 읽지 않았을 책들이다.
우리집에는 매달 해외선교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책자가 쌓인다. 목사인 조카네를 위해 후원하고 있어서 보내오는 것이다. 좋은 말씀이 담겼을텐데 분리수거 담당인 내가 정기적으로 내다 놓는다.
아내나 아이들이 그 책을 읽는 것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처음 한 두 권 읽고 난 이후로는 손이 안가기 때문이다. 다른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요청을 하는 것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선생의 책들은 성경 통독을 못한 내게 있어 미취학 아동도서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한글을 깨치듯 무한한 삶의 지혜를 담은 성경과 당신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해준다.
무엇보다 해박하고 다양한 해설로 새로운 시각, 열린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종교서적보다는 재미있는 역사서나 철학 에세이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버려지는 책이 있고 간직하게 되는 책이 되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집필한 <여성의 아들 예수 / 김근수>는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있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대두되는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 주고,  간과하기 쉬웠던 예수의 행적과 말씀을 뒤쫓아가며 낱알을 줍는 듯한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똑같이 당신을 따랐지만 배신의 대명사였던 남성제자들과 충실한 여성 제자들이 대비되는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의 어느 대목 하나 놓칠 것이 없지만 내가 옮겨 적었던 문장들은 이런 것이다.
“여성이 억압받고 이용당하는 사회에서 여성을 먼저 비판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찾는 순서에 맞지 않다”
감히 <여성의 아들 예수 / 김근수>를 통해 페미니스트 예수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시의적절한 말씀인가.

그리고 선생의 이런 해석은 무릎을 치게끔 만든다. “예수는 건축 일용직 노동자로 해석되는게 타당하다. 목수, 석수, 대장장이를 뜻하는 직업이므로…..”
당신은 없는 죄까지 만들어 벌하던 신분이 아니라 몸을 일으켜 우리 눈 앞에 역사를 만들어 보여주신 노동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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