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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장판교를 아십니까

조조와 유비는 태생에서부터 입신해서 나라를 세울 때까지 닮은 점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들이다.
그래서인지 정사 삼국지는 후대의 명맥을 살펴 결과까지도 조조 쪽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야사인 삼국지연의는 인품과 혈통을 중시하여 유비 쪽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나중까지 성했던 위나라의 조조가 유비 이후 급격히 쇠했던 촉을 이긴 승자로 봐야 할 것이다.

이렇듯 다른 인물들이지만 인재를 등용해서 제 사람으로 만드는 데 탁월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성취는 수많은 난세의 영웅들의 목을 바쳐 이뤄 낸 것이기 때문이다.
조조와 유비의 용인술을 말해주는 '전위'와 '조자룡' 두 장수에 얽힌 일화를 들춰보자

조조에게는 침소 출입을 허락한 지금의 경호실장이자 믿음직한 용장 전위가 있었다.
전위는 연주를 차지한 후 무장 하우돈이 천거한 사람이다. 하우돈이 사냥을 갔다가 범을 쫓는 전위의 신출귀몰한 무공에 반했던 것이다.
조조는 전위의 인물됨을 즉각 알아보고 자신의 비단 옷을 벗어주며 도위라는 벼슬을 내린다. 이후 전위는 여포군에 포위되어 조조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두터운 포위망을 뚫고 사지에 놓인 주군을 구해내는 맹활약을 펼친다. 자신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였다.

전위가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다.
여색을 탐하던 조조가 절세 미녀인 적군의 미망인을 군막으로 불러들여 음락을 즐기고 있었다. 적장의 조카가 무장과 군졸을 끌어 모아 조조를 치려했으나 군막을 지키는 전위가 두려웠다. 그리하여 주연 자리를 마련해 전위를 취하게 하고 그의 무기인 쌍철극을 감추었다.

그날 밤 조조의 막사에 쳐들어온 군사의 함성에 놀라 깬 전위는 자신의 무기가 사라졌음을 알고 적군의 칼을 뺏어 사정없이 벤다. 칼날이 시원찮자 두 손에 군졸 하나씩을 잡고 휘두르며 물러서지 않는다.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용력에 군졸들은 기가 질린다.
마침내 갑옷도 걸치지 못한 전위는 조조에게 탈출할 시간을 벌여주다 수십개의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고 창에 찔려 목숨을 잃는다.
조조는 전위가 버티는 동안 조카 조안민과 말을 타고 도망친다. 조안민 마저 뒤쫒아오던 적군과 맞서다 숨지고, 조조는 달리던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때 다시 맏아들 조앙이 자신의 말을 내어주자 거침없이 내뺀다. 그 와중에 조앙 역시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숨지고 만다.

마침내 돌아와 반란을 수습한 조조는 여색을 밝히던 자신 때문에 죽은 맏아들과 조카 그리고 전위를 위한 제사를 지내면서 슬피 울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비록 맏아들과 조카를 잃었으나 그것은 그리 슬프지 않다. 지금 내가 우는 것은 오직 전위를 위해서이다.”

유비에게는 도원결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형제로 여겼던 인물이 조자룡, 조운이다.
유비는 조운을 각별히 여겨 자신의 군막을 함께 사용할 정도였다.
그런 유비가 조조의 대군에 쫓겨 패주하다 겨우 피신했을 때 조운은 단신으로 조조의 대군 속에 뛰어들어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구해오는 활약을 보인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길을 비키지 않는 자 모두 죽으리라!”
조운의 출중한 무술에 감탄한 조조는 조운을 사로잡으라는 명을 내린다.

마침내 유비의 아들 아두를 품에 안은 조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장판교에 도착했을 때 장판교 다리 위에 홀로 버티고 선 장수가 있었으니 바로 장비다.
“연인 장익덕이 여기 있다! 누구든지 나와서 나와 자웅을 겨루어 보자!"
조조는 익히 관우에게서 장비에 관해 들었던 바가 있는지라 군사를 물린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장판파 전투’다.

그렇게 진영으로 돌아온 조운이 갑옷에 품고 온 아두를 유비에게 건넸다. 어린 아들을 안아 든 유비는 느닷없이 아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친다.
"이 놈 때문에 하마터면 훌륭하고 용맹한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아들은 다시 낳을 수 있으되 조운 같은 장수는 다시 얻을 수 없거늘…..”

우리는 흔히 조조의 용인술과 유비의 인품을 비교하지만 두 사람 모두 부하들을 제 자식보다 더 아끼고 우선했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한 리더십이 부하들로 하여금 목숨을 버리는 충성을 하게했고 그들을 난세의 영웅이 될 수 있게 했다.

아무리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지만 나를 진정으로 따르고 위하는 인재는 드문 세상이다. 필요한 능력만 사면 되고 걸맞는 보상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큼은 쉽게 살 수 없다는 걸 동서고금은 보여주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리더십의 가치는 결코 빛이 바래지 않았다. 사람사는 세상에는 사람이상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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