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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가세연

“살려는 드릴게” 영화 <신세계 2013>에서 이중구(박성웅 扮)가 조직 원로들에게 한 서늘하고 살벌한 말이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에는 뇌리에 박히는 대사들이 꽤 많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역시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이중구가 죽기 전에 한 말이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살 수 있어 다행인건가? 이왕 죽을 것 같으면 날씨라도 좋아야 하나?
날씨는 좋은데 마음은 찌뿌둥한 게 며칠째다.
기분이 별로다. 심사를 뒤틀리게 하고 헛구역질나게 하는 소식까지 들린다.
인테리어에 대한 이야기나 하는 게 좋겠다.

한 사람이 생활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면적은 얼마나 될까.
주택법에 규정된 1인가구 최소 주거면적은 14m²(약 4.2평)이다. 주방시설을 포함한 것이다. 그렇다면 배달음식만 먹으며 생활하는 7.8m²(약 2.4평)규모의 원룸이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깔끔하고 세련된 가구 즉 침대, 테이블, 의자와 위생적인 양변기와 세면기, 샤워실 그리고 TV까지 갖춰져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가구들은 죄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콘크리트 소재의 붙박이 타입이고, 일체형인 양변기와 세변기, 샤워부스는 스테인레스 스틸로 되어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스테인레스 재질은 세균 번식을 막는다. TV은 요즘 앤틱 숖에서도 구하기 힘든 흑백브라운관 TV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이만한 게 드물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걸 무상 제공하는데다 매번 바뀌는 메뉴인 배달음식까지 무료다.
굳이 흠을 잡자면 창이 좀 작은데 폭 10cm에 불과한 세로 창이다. 아무래도 세련된 건물 외관을 배려한 디자인인 것 같으니 넘어가줄만 하다.
모든 집기와 문짝도 이케아같은 허술한 조립식이 아니고 용접과 리벳으로 되어있다. 이건 인테리어 전문가인 내 예리한 눈으로 잡아낸 것이다. 그래서 나사를 조여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헐거워져서 옷에 걸릴 일도 없다. 섬세한 디테일까지 돋보이는 것이다.

대지와 외관을 보자면 이 건물은 무려 73만평(600 ac)이 넘는 광활한 대지위에 작은 새 둥지처럼 살포시 앉아 있다.
외부 침입이나 자연재해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게 견고한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낮고 단아하게 지은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이만한 주거 공간을 찾기 어려운데 아쉽게도 방 개수가 많지 않다. 독실로만 지어져서 전세계 단 490명만 그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드문 행운과 기회를 요즘 무척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을 가세연의 강용석과 김세의가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다.

이 곳은 1994년에 지어진 ADX플로렌스 교도소 (ADX Florence)다.
최악질의 흉악범과 테러리스트를 수용하는 감옥인 것이다. ADX는 ‘Administrative Maximum Facility (최고 보안 관리 시설)’의 약자다. 최첨단 보안시스템을 자랑해서 탈옥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는 호언이다.
24시간 중 수영장 같은 좀더 넓은 공간에서 혼자 맨손체조나 해야 하는 1시간을 제외하면 23시간을 혼자 지내야 한다.
수감자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으며 동선조차 겹치는 일이 없다. TV에서는 온종일 종교방송만 나온다.

이 교도소를 가리키는 별칭이 꽤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지옥((clean version of hell)’ 혹은 ‘죽느니만 못한 곳 (Worse than Death)’ 가 그것이다.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며칠만 가둬 두면 누구나 정신줄을 놓는다. 외로운데다 너무 깨끗하기까지 하니 맨 정신이면 오히려 이상하다.
이 교도소 역시 청결도는 호텔급인데 수용자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나갈 수 없다. “정신병도 형벌”이고 “너의 죄를 죽을 때까지 뉘우쳐라”라는 훌륭한 모토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어디 정신 뿐이겠는가 감각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사형시켜달라”고 외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살아서 나갈 일이 없으니 영화에서나 보듯 갱단 두목이 교도관을 협박하거나 매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교도소의 수감자는 인간 이하의 죄를 지었다고 판명된 자들이다.

가세연 패거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다.
인간의 언어로 갖은 죄를 지었으며 인격살인을 저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엄마의 사생활을 문제 삼아 어린 자녀를 끝없는 혼돈과 어둠의 구렁텅이로 던져 넣었다. 한 여성의 시민권을 말살하고 어린 아이들의 창창한 인생을 망가뜨리는 패악을 저지른 것이다.
연쇄살인보다 극악하고 아동포르노보다 혐오스런 악행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니 그들에게 ADX플로렌스 교도소는 오히려 과분할 지도 모른다.

애비도 14년 감옥살이한 강용석에게 독방까지는 너무하다고 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 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더러운 입을 계속 놀릴 수 있게 2인실이 마련된 교도소도 있다. 러시아의 흑돌고래 교도소((Исправительная колония № 6) 가 그것이다. 이 교도소는 2인 1실이니 김세의를 말동무 삼아 다정하게 지내면 된다.
이 곳 역시 “차라리 사형시켜 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고 하니 ADX플로렌스 교도소와 동급이다.

그런데 동토의 나라 러시아답게 좀 춥다.
카자흐스탄 국경에 있어 겨울에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데 담요 한 장으로 버텨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여름에는 40도까지 따뜻하게 데워지니까. 말하자면 겨울에는 무척 시원하고 여름에는 엄청 따뜻하다.
건물 역사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아무래도 시설은 낡았고 청결도는 미국보다 떨어진다. 그래도 하얀 도기로 된 익숙한 세면대와 인간 친화적인 목재 테이블을 쓸 수 있다.

다행히 위생관념은 철저해서 배식 그릇은 긴 쓰레받기 같은 장대로 밀어 넣어 배식해 준다. 혹시라도 스프나 음식에 손이 닿아 세균이 번식할 것을 우려한 조치로 이해된다.
교도관들은 무뚝뚝한 편이지만 수감자들을 “인간 취급 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대들다간 즉시 쏴죽인다. 아니 쏴 죽여주는 인정은 남아 있다.

죄수 복지도 꽤 잘되어있어 수감 중에 죽더라도 교도소 내 묘지에 묻어준다. 차가운 시체가 교도소 밖을 나가게끔 모질게 내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교도관이 예절 교육까지 몸소 시켜주는데 방에서 와서 걸을 때는 수갑을 찬 채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걷게 한다. 겸손과 인사법을 익히게 해 주는 것이다. 건방지고 안하무인인 가세연 패거리에게 이보다 적합한 곳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사형유예국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시체로 복역하게 만든다.

미국의 ADX플로렌스 교도소는 죽느니만 못하게, 러시아의 흑돌고래 교도소는 살아있는 시체로 만든다.
왠지 부럽다. 가세련 패거리 같은 인간쓰레기들을 가둬 둘 이런 교도소 하나쯤 생겼으면 좋겠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만이 살인은 아니다. 산 목숨이 아니게 만드는 인격 살인,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인권 말살도 살인이다.
이 연쇄살인범들을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의 법은 왜 그대로 방치하거나 엄하게 처벌하지 못하는지 답답하고 화가 난다.

패륜적인 극악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몇 년에 걸쳐 소송을 해야한다. 그 마저도 명예훼손이니 뭐니해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 인간 이하의 말종들을 ADX프로렌스나 흑돌고래교도소 같은 곳에 영원히 복역하게 못할 바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해야 한다.
현대식으로 이승의 연옥으로 보낼 수 없다면 고대의 함무라비 법전이라도 적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건물 청소하는 할머니가 숨졌다. 다행히 과로사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불리할 것만 같았던 판결을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의 실천력으로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변호사 자신이 할머니가 오르내렸을 계단을 직접 청소하며 심장 박동수를 체크한 자료를 내민 것이다.
ADX프로렌스 수감자들이 인권탄압을 호소했다. 인권단체가 조사를 나왔다. 그랬더니 너무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깨끗했다. 심지어 교도관은 수감자에게 욕설은 커녕 말 한마디를 건네지 않고 운영하니 머쓱해져서 그냥 돌아갔다. 생전 거실 바닥도 안닦아보고 엘리베이터만 탔을 판사에게 그 자료가 없었던들, 변호사가 그 고된 일과를 체험하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고민만 했다면 판결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이재명이 한 예능 프로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며 청소부였던 여동생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그의 여동생 역시 새벽에 출근해 청소를 하다 숨졌지만 과로사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빈곤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보지 않았거나 억울하고 원통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으로 당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기층민의 삶, 가난하고 억울한 심정을 알아 줄 사람을 선택하는 것도 지혜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인격살인을 겪는 선량한 국민을 보호해주는 국가의 존재를 보고 싶다. 인격 살인자를 혹독하게 엄단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당신은 사람이 먼저인 국정운영 철학을 실행할 적임자는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민초의 삶을 생생히 기억하고 가족의 가난하고 억울한 죽음을 목도한 인권변호사 출신 행정가인가
아니면 평생 기득권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가족을 파멸시키려는 검사출신 망나니인가?

<사진은 ADX프로렌스 교도소 원룸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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