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Dec 16. 2021

어디를 바라 볼 것인가

지난 이틀동안 나름 분주했다. 일요일에 광주선생님 내외분이 사무실에 다녀가셨다.

한달 전, 친지 결혼식으로 상경하는 김에 얼굴 한번 보자는 기별을 받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가 됐다.
이후로 친구와 나는 틈만 나면 주변 맛집과 메뉴를 검색하고 상의를 했다. 음식에 관해서는 식객 허영만은 내일 오라고 하실 분들이다. 숙의를 거듭한 끝에 식당이 아닌 우리가 서식하는 사무실로 모시기로 했다. 메뉴는 민어회와 해물회 그리고 민물 매운탕으로 정했다.
일요일 가락시장에 주문해뒀던 민어회와 해물회가 오후 2시쯤 도착했다. 딸려오는 매운탕거리는 보내지 말라고 일러뒀었다.

친구가 사무실에서 인편으로 온 회를 받고 있는 시각에 나는 파주에 있었다. 민물 참게를 넣은 빠가사리 매운탕을 사러 간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에 수저가 우리 꺼 두 벌뿐 아닌가요?”
“그러잖아도 집에서 챙겨온다는 걸 깜빡했네요. 그리고 컵 뿐이라 막걸리 사발도 없어서 다이소에서 유리잔을 살까 궁릴 중이긴 한데....”
“내가 집에 들러서 챙겨 가죠”
무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무전을 주고 받았다. 그래도 긴장감은 없고 가벼운 흥분과 반가움만 있었다. 대통령이 방문한다고해도 우리 두사람 성정상 이렇게 부산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심 믿는 바도 있었다.
“어차피 홀애비 둘이서 준비하는 거라 큰 기대를 안하실테니...”
“그렇죠 얼굴 보고 대화 나누는 게 주라서….”
다시 집에 들러 제일 그럴싸하고 기품있는 막걸리용 그릇 네 개와 수저 두벌까지 챙겨서 사무실로 돌아오니 4시가 다 됐다.

선생님 내외분은 5시가 조금 안돼서 도착하셨다. 우리들 서식 환경을 돌아보시고 사진도 여러 장 찍으셨다. 서가를 많이 찍으셨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우리 두사람의 아내를 위한 선물까지 챙겨주셨다. 아마 만만찮은 남정네들과 잘 살아줘서 기특하고 고맙다는 뜻이리라
“내가 볼 쩍에 이건 ㅇㅇ엄마한테 어울리고 요건 ㅇㅇ 엄마한테 맞을 것 같어. 보고 둘이서 바꿀라믄 바꿔.” 자개가 박힌 자그만한 접이식 손거울이었다.
“이렇게 해 놓고 지내면 집에 안들어가고 싶겠구만”
회의 테이블에 올려진 민어회와 해물 회, 그리고 친구 어머님이 챙겨주신 회무침에 진심으로 감탄하셨다. “하이고 둘이서 그동안 어쨌는지 훤히 다 보이는구만…”
막걸리 병이 비워져 갔다. 화수분처럼 내놓는 막걸리에 “도대체 몇 병을 사다놓은 거야?”라며 웃으셨다.
“사모님을 위해 맥주와 소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녀. 나도 막걸리 먹을 것이네. 맛나네”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마침내 부르스타에 민물매운탕을 올렸다.아내가 크기가 넉넉해야 한다면서 챙겨준 넓은 냄비가 아니었다면 넘칠 뻔 했다.
나는 얼른 손을 씻고 와서 수제비를 떴다. 수제비는 모름지기 얇아야 한다. 식당에서 떠 주는 수제비 두께에 불만이 있다. 조명이 비칠 정도로 만두피처럼 얇게 떴다.
 “저 봐. 저… 수제비를 저러코롬… 잘하네. 하하하”
“가만 계셔보세요. 제가 기가 막히게 만들 테니까….”
여러모로 사무실을 장소로 정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메뉴와 정겨운 대화로 밤이 익어갔다.
두 분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호텔로 돌아가셨다. 다음날 오후 2시 50분 기차라고 하셨다. 친구와 둘이서 찾아 뵈러 가겠다고 했다. 예정에 없었지만 좀 더 뵐 수 있고 한 끼를 더 모실 수 있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점심은 노포인 고등어 연탄구이집으로 모셨다. 네 사람의 취향과 식성이 비슷해서 더 그립고 보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예상한대로 만족해하셨다.
 “시간 여유가 있는데. 국립 현충원을 좀 거니는 건 어떠세요” 친구의 제안에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국립 현충원 앞을 얼마나 지나 다녔을까. 아마 수십번 아니 수백번도 더 됐을텐데 나 역시 정작 경내를 둘러 본 기억은 없다.
산책하듯 현충원 경내를 거닐었다. 박정희 대통령 묘역을 지나 김대중 대통령 묘역에 도착했다. 네 사람은 나란히 서서 참배를 했다. 대통령 묘역에는 별도의 관리인이 있었다. 최근 2년 전 이희호 여사와 합장을 했다.
관리인의 설명으로 이희호 여사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13년간 매주 목요일마다 단 한번도 빠짐없이 다녀가셨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장군 묘역을 마주하고 있고, 김대중 대통령은 병사들을 내려다보고 계시는구만….”
선생님의 말씀처럼 두 대통령 묘역은 사뭇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용산역으로 이동해 커피 타임을 가졌다.
사모님이 과자봉투 몇개가 든 비닐봉지를 건네셨다.
“갖고 가서 둘이서 묵어. 우리가 먹던 것인게…” 나도 모르게 너털 웃음이 터졌다.
내 나이 쉰 여섯이다. 어느 누가 마음 편하게 이런 과자봉지를 쥐어 줄 것이며, 누가 있어 정성드려 수제비를 얇게 뜨고 싶어질까.

댁에 도착하셔서 두 분이 문자를 보내셨다.
"우리 집에 도착했어.ㅎㅎ 아~ 그 정성스런 한 상차림! 안해본걸 하느라 얼마나 고심하고 궁리했을까이??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ㅎㅎ...  
보고, 먹고, 같이 사부작 걷고~ 퍼펙트한 서울 나들이 였음ㅎㅎ 현충원 참배는압권~ 수행원님! 고맙습니다.ㅋㅋㅋ
아~~~수제비ㅋㅋㅋㅋ(사모님)"  
월요일은 내가 차를 운전해서 두 분을 모셨다. 참배하다보니 우연찮게 나만 카고바지에 패딩 차림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검은 롱코트 차림이었다. 내가 수행원같다고 투덜대서 한바탕 웃었다.

" 여기 저기 전화하고, 바쁘게 움직였을 모습을 그려보며...... 문, 송교수 둘의 깊은 마음이 담긴 맛있는 대접에 이틀이었지만, 행복한 긴 여행을 다녀온 느낌......
나는 복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달콤하게 마무리합니다. 코로나 조심하고 있다가 또, 좋은 시간을 그려 보아야지......(선생님)"
정작 큰 복은 마음으로 따르고 존경하는 두 분을 뵐 수 있는 내가 받고 있는데 늘 이렇게 말씀하셔서 또 배우게 하신다.

작가의 이전글 가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