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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인간 오미크론

아내가 만든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출근했다. 친구와 마시라고 와인이 어울릴듯한 병에 담아줬다. 한 잔 마셨을 뿐인데 낮술이어서 그런 건지 도수가 높아서인지 금방 알딸딸해진다.

와인 아니면 고량주를 즐기는 사람이 무슨 회가 동했는지 요즘 막걸리와 맥주 만드는데 꽂혔다. 술 만드는 교실을 다니면서 나타난 일상의 변화다.
막걸리는 1주일, 맥주는 1달이 걸린다. 맥주를 마시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이번 막걸리가 아내의 첫 작품은 아니다. 2주전쯤에 만든 첫번째 것은 시음회에서 반응이 너무 좋아 동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 방울도 맛을 못봤다.

막걸리는 막거른 술이다. 얼핏 주방에서 본 쌀 양이 많던데 막걸리는 몇 병 나오지 않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일반 양조장에서는 쌀 10kg에 막걸리(750ml) 80병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이걸 거르고 거른 안동소주(400ml)는 겨우 20병 정도 나온다고 되어있다.
파는 막걸리는 물을 탄 것이다. 이것은 18도 가량되는 수제막걸리 원액이라서 20병 정도 밖에 안나온다. 게다가 양조장은 수입쌀이고 집에서는 국내산을 쓴다.
속 쓰릴까봐 몇 사람의 몇 끼분인지는 셈을 해보지 않았다. 술이 고대부터 먹고 살만한 상류계층에서 시작된 이유를 알겠다.

신분제가 강고하던 시절, ‘불가촉천민’계급이 있었다. 누구나 학창시절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들어본 말이다.
인도가 두드러질 뿐 전 세계에는 사람취급을 못받는 비슷한 계층이 존재했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백정이 그러했고, 지금도 그런 인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친구 형님은 부사관으로 근무하다 전역해서는 정육점을 운영했다. 자식들이 결혼적령기가 되자 잘되던 정육점을 접고 다른 업종으로 전향했다.  

그런데 인도에서조차 법적으로는 사라진 이 불가촉천민 집단이 현대에 부활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차별 받고 천시되는 계급이 아니라 성년이 된 이후의 자의적인 생각과 언행으로 평가받는다. 과거와 달리 현대의 불가촉천민은 높은 학력과 좋은 직업 주목받는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많다.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혜택을 충분히 받고 성장했는데도 타고난 나쁜 성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배운 바를 세상에 이롭게 쓰지 않아서 ‘불가촉천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렇듯 스스로 불가촉천민을 자처한 자들과 교류는 커녕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반대편 길로 건너가든지 차라리 되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비슷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오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부모님은 잔소리가 많은 분이 아니셨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내가 무슨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려도 꿈쩍하지 않는 부처가 되셨다.
어린 시절 개구지기로는 동네에서 첫 손가락에 꼽혔던 내게 주로 회초리를 든 것은 어머니셨다. 드물게 아버지가 매를 드시는 날은 그야말로 초상날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거짓말을 들켜서 발가벗겨져 집 밖으로 쫓아 낸 것도 아버지셨다.
중학교 때는 괜한 반항심에 급락한 성적에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백지 답안지를 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분명 담임선생님 전화까지 받은 어머니께 들어서 알고 계실텐데 언급조차 안하셨다. 엄습하는 공포가 반항심을 쪼그라들게 했다. 이후 그런 부질없는 짓을 그만뒀다. 아버지는 정확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훈육이나 체벌을 작정한듯 전혀 하지 않으셨다.

그런 나로서는 대학생 때까지 매를 맞았다는 #윤석열'의 말이 조금 믿기지 않는다.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이 된 나이에도 그런 얘기를 자랑스레 떠벌리는 모지리이고 보면 당시 애비의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배울만큼 배웠고 더구나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부모인데 의외다. 겉과 속이 다른 '쇼윈도우 식자층'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남 앞에서는 지적이고 교양 있는 척 하지만 실상 본 모습은 지식과 실천은 별개고 교양과 품위는 걸쳤다 벗기를 반복하는 값비싼 외투쯤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내가 불가촉천민으로 분류하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학력이나 자격증으로 남을 해코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좌제가 사라진 세상에 본인의 행태를 보고 굳이 부모가 누군지 추정하게 만드는 못난 자식들도 있다.
#강용석'이 그렇다. 잘 돌아가는 머리로 익히 배운 법 지식을 악용하면 사회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이런 인물에게 정년이 없는 자격증과 성능 좋은 마이크를 쥐어주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법을 피해가며 남을 해코지하는 방법과 그것으로 부를 축적하는 묘수를 누군가를 통해 깨우쳤거나 사사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지는 상상에 맡긴다.

알랑한 지식과 두터운 양심, 무딘 도덕심으로 무장한 사람들도 있다. #진중권'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진중권을 옹호하고 좋아하는 친한 동생이 있다. 둘이 만났을 때 진중권이라는 이름은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이 된다. 어젯밤에도 한 잔하고 헤어지기 전에 ‘진중권’이란 이름이 나왔다.
“형. 진중권이 얼마나 똑똑하고 좋은 사람인데…. 왜 그래”
“죽을래? 진중권이 그 새끼는 ‘인간쓰레기’란 말이야”
우리 둘은 자란 배경도, 정치적 성향도 거의 정반대다. 그런데 내가 무척 사랑하는 동생이고 늘 보고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고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한다. 진심을 다해 살고 싶어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상처 받으면서도 남을 이용하거나 제 이익부터 챙기지 않는 착한 심성을 지녔다. 진중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인 것이다.
종교와 정치 이념은 달라도 상관없다. 배움의 깊이와 지위의 높낮이도 문제가 안된다.
사람이면 된다. 사람답게 살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으로 죽고자한다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둘은 늘 그랬듯 허그를 하고 헤어졌다.

전 세계에 존재했던 '불가촉천민'은 다양한  기원과 특징을 가졌지만 비슷한 일에 종사했다. 죽음과 연관된 도축, 시체처리 그리고 더러운 작업 즉 오물이나 쓰레기를 치우고 가죽을 염색하는 따위로 생계를 꾸려왔던 것이다.
다만 프랑스의 천민계급인 '카고'에게는 도축을 맡기지 않았는데  유럽 특히 게르만 문화에서는 도축하고 고기 나누는 일을 최고권력자를 해왔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불가촉천민이 맡았던 일이 있었으니 '망나니'였다.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제도를 터부시하는 현대문명사회에서 실질적이고 실현가능한 망나니짓을 하는 '현대판 망나니' 불가촉천민들이 있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권력으로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맘에 들지않으면 누구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뉘어놓고 쥐어 준 법의 칼로 발목과 목을 치는 인간백정,
인간의 두뇌 그리고 터진 주둥이와 뱀의 혀로 인간의 피눈물을 쥐어  짠 돈을 챙기며 히히낙락하는 소시오패스.
자신의 허물과 오류와 실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상처와 과거는 헤집기를 좋아하고 빈정대는 것으로 존재감을 충족하는 인간버러지.
그들이 이 시대의 '불가촉천민'이다. 털 끝조차 닿는 걸 피해야 하는 더러운 족속이며,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서 숨쉬는 것조차 부끄럽게 하는 인두껍을 쓴 짐승인 것이다.

풍성한 가을 들녁이 내어준 쌀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간다.
좋은 술을 빚듯 맑은 눈으로 선별하고 정성을 들여 익혀야 한다. 그래서 비록 적은 양이지만 달콤하고 향긋한 인간관계를 걸러 마신다면 지나온 세월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불순물을 내버려두고 착향제를 섞기에 한번 뿐인 인생은 너무 아깝다. 하물며 독극물인 다음에야 더할 나위 있겠는가.

부모님이 당신의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주신 교훈이 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업수이 여겨선 안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라" 그리고 "사람 안될 것들과는 멀리 해라"
현대판 '불가촉천민'과 그들과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은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져라. 오미크론보다 더 오싹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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