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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기분좋은 저녁

책 소개나 먹방글은 잘 쓰지 않는다. 책은 내 자신 부족함을 잘 알기에, 먹방은 워낙 많은데다 잘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렇다.
더구나 가끔 올리는 먹방글에도 식당은 밝히지 않는다. 취향이 다를테니까 (그리고 갑자기 복작대면 줄 서게 될까 저어하는 이기심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밥집을 소개한다. '음식점'이나 '식당'이 아니라 '밥집'이다. 나는 '밥집'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왠지 그 말의 뉘앙스에 갓 지은 밥 냄새가 폴폴 난다.
6호선 상수역 4선 출구로 나와 강변도로 방향으로 50미터정도 걷다보면 보이는 '연우 김밥'과 '소고기국밥'이다. 상호가 그렇다.

연우김밥은 4~5년 된 제법 오래된 집이고 바로 붙은 '소고기국밥'은 생긴 지 7~8개월 됐다.
깁밥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맛집이다. 나 역시 자주 먹는다. 한 줄 3000원인데 집에서 만 것 같은 제대로 된 김밥을 먹고싶다면 들리라고 권하고 싶다.
'소고기국밥' 자리는 이전에 반찬가게였다. 연우김밥과 한 건물에 있고 메뉴도 단품이라 주인이 한 사람인가 짐작만 하고 있었다.
몇 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김밥을 사들고 왔다.

오늘은 김밥을 사러갔다가 대기자가 많길래 작정하고 소고기국밥을 먹었다.
합정역과 홍대 인근에 있는 식당은 거의 안가본 곳이 없다. 이 곳에 둥지를 튼 지 20년이 되니 그럴만도 하다. 국밥이 드물게 맛있다.
예전에 사무실 근처에 커다란 무쇠솥에 끊인 소고기국밥을 내놓던 가게가 한 곳 있었다. 유명세를 탈 정도로 잘 됐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문닫은지 어언 2년 정도 된다. 무쇠솥에 끓인 것은 아닌데 그 맛에 견줄 만 하다.
그런데 내가 이례적으로 시시콜콜 밥집 정보와 위치까지 알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국밥집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글씨로 '공기밥 무한리필. 마음껏 드세요'라고 씌여 있다. 가격표를 보니 7000원이다. 이 동네에선 싼 편이다.
"옆 김밥집하고 같이 하는가 봐요"
"네. 같은 집이에요. 계좌번호가 같잖아요. 맛 괜찮으시죠?"
('어떠세요?'가 아니라 '괜찮으시죠?"다. 자부심이 느껴진다.)
"네. 맛있습니다. 그럼 어느 분이 주인이신거죠? 김밥집 사장님?"
(김밥집은 아주머니 두 분이 하시고, 국밥집은 한 분이 계시다.)
"아뇨. 사장님은 젊어요. 저희도 잘 못봐요. 재료 공급하고... 가끔 들르긴 하는데 얼마나 바쁜지...."
(의외다. 주인이 따로 있는 식당은 오래가지 못하고 맛도 별로라는 선입견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렇군요. 깁밥집 아주머니는 오래 되신 것 같던데...."
"네. 항상 왼편에 있는 언니는 한 3년... 여기는 한번 오면 잘 안나가요. 사장님이 정말 괜찮거든요. 얼마나 착하고 진국인지... 어떤 땐 바보같다니까요"
(또 의외다. 식당에서 일하는 분이 이렇게 주인을 칭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군요. 괜찮다는 말씀은 양심적인데다 일하시는 분들께도 잘하신다는 뜻이겠네요"
"네. 저희한테도 너무 잘하고... 음식에 고집도 있고 잘 알아서... 재료도 다 시골에서 제대로 된 것만 골라와요. 비싸져도 절대 안바꿔요."
"그래서 김밥도, 국밥도 맛있는 것 같군요"
"김밥이 입맛에 맞으셨나 봐요. 어른들 입맛에는 딱이긴 해요. 조미료도 못쓰게 하거든요. 한번은 계란 값 한창 올랐을 때 있었잖아요. 김밥 언니가 계란 지단을 쪼끔, 아주 쪼~끔 얇게 했거든요. 그런데 사장이 들어서 보더니 어떻게 알아채고는 '누나 달걀 아끼지 마요. 두껍게 하세요' 그랬다니까요. 깔깔깔....."
"훌륭한 분이네. 젊은 사장이..... 그런 사람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아휴 조금만 욕심내도 잘 벌텐데.... 바보예요 바보. 어떤 때 보면.... 밥 맛있으시죠? 농협 쌀이거든요. 요즘 쌀이 비싸졌는데 제가 공기밥 무한리필 하지 말자고 했더니 "누나. 밥 조금만 드시는 손님도 계시잖아요" 그러는 바람에 더 말도 못꺼냈어요. 어떻게 된 게 종업원은 더 아끼고 줄이자고 하고 사장은 못하게 감시하고....깔깔깔"
(아주머니들을 '누나'로 부른다는 것만 봐도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말 언제 한번 마주쳐서 보고 싶다. 그 사장님. 그런 말씀을 듣는 경우를 잘 못봐서...."
"걔가 쉰 초반쯤 됐나. 궁금하시죠? 저도 우리 애들한테 그러거든요. 너희들도 우리 사장같은 사람이 되라고...... 어! 너 어디서 오는 거야?" (대화 중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여성을 반긴다.)
"언니. 있잖아. 고추가루......"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아주머니가 그 여성을 안아서 내게로 돌려세운다.
"우리 사장님 궁금하다고 하셨죠?  얘 오빠에요. 얘 보시면 돼요. 똑같이 생겼거든요. 깔깔깔"
영문을 몰라하는 사장의 여동생과 멋쩍어 하는 나.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아주 드물다. 이런 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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