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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지금 우리가 그래요

[ 추운 겨울 어느 날, 달팽이 한 마리가 벚나무의 얼어붙은 줄기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달팽이가 아주 느리게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는데, 딱정벌레 한 마리가 나무의 갈라진 틈에서 고개를 내밀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 그래봤자 헛수고야. 아무리 올라가도 아직 버찌는 없다구.”
달팽이는 태연하게 위로 올라가며 이렇게 말했다.
“아냐. 내가 저 위에 닿을 때쯤엔 열려 있어.” ]
<박상우 작가수첩 중에서>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그리고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딱정벌레는 제 눈이 어둡거나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작은 변화에 둔감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일비일희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가끔은 조급증이 불안과 분노를 동반해서 미리 좌절하거나 냉소의 한기를 불어내 주변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다고 뭐가 바뀔 것 같애?" "원래 세상은 다 그래"
그 사람들은 모른다. 결국 버찌는 열릴 것이고 달팽이 차지가 될 것이란 것을...

나는 짐짓 점잔을 빼며 하는 말에 두드러기가 돋는 체질이다.
우아의 기름기나 가식의 데코레이션이 거북하다. 마음의 귀로 듣고 담백하고 정갈하게 말해야 사람을 움직인다.
지적 우위를 뽐내거나 남의 눈을 의식한 말은 별로다. 대개 콕 집어내지 않고 교양을 발라 말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떤 때는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아"보다 "다 별론데 특히 이건 더 싫어"가 차라리 선명하고 거름이 된다.

나는 "그래도 마음은 부자야"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란 말을 더 좋아한다.
자존감이 버섯의 포자처럼 터지는 것 같다.
전자에는 포기와 자족의 기운이 감돌고 후자에는 생명력과 변화의 조짐이 꿈틀거린다.
멈춤과 전진의 차이다. 달팽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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