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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16. 2021

당당하게 오픈해라

술 마신 다음날도 아닌데 콩나물국밥이 당겼다.
제대로 된 걸 먹고 싶어 다른 노선 버스를 탔다. 단번에 회사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그 식당을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고 전철을 이용하는 번거러움이 따른다.

7000원짜리 콩나물 국밥을 먹기위해 교통비가 몇 천원 더 드는 비경제적인 짓이다.
물론 집 가까이에도, 회사 근처에도 콩나믈 국밥집은 있다.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미소한 차이 때문에 채산성이 나오지 않아도 품이 더 들어도 기꺼이 감내하는 그런 경우 말이다.
어릴적 외갓집에서 맛봤던 의령 소바 한 그릇이 생각나서 6시간을 달려갔던 내가 아닌가.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오리지널은 망개떡 떡방앗간과 마주하는 조그만 식당이다. 둘 다 프랜차이즈 분점은 없다) 나는 망설임도 없고 잦은 것이 탈이라면 탈인데 그런 나의 미욱함이 좋다.

38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인데 정작 내가 끌리는 건 콩나물에 대한 자부심이다.
식초와 한방재로 키운 콩나믈이라는 걸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특별한 레시피보다 재료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설사 국 한 그릇에 인삼의 가는 뿌리 한 가닥 성분도 검출 안될지라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식당을 나서는데 출입문 옆에 쌓아놓은 쌀 푸대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자주 가는 김밥집에도 그렇게 쌀부대가 쌓여있었다. 공간이 협소해서 손님이 드나드는 출입구에 쌓아 둔 것이다.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말리고 싶은 일이다. 그런데 불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런 불편함쯤은 감내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진심이 부침을 거듭하는 식당의 사십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게해 준 것이다.
정작 중요한 건 우리는 이런 쌀을 쓰고 있다는 무언의 자부심이다.

쇼핑몰 고급 식당가의 냉면 전문점을 작업한 적이 있었다.
손님이 조리 전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주방 내부를 전부 오픈한 설계를 했다. 주방장을 비롯한 작업자들은 다소 난색을 표했지만 별 문제가 없었다. 김치를 담그든, 한가한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까지도 일련의 조리 과정이지 않느냐는 설득이 먹혔다.
유리창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투명함만큼 설득력 있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편은 없다.

식당 뒷 편에 작고 허름한 커피숍이 있다. '커피의 장인'이란 프랭카드 문구에 또  발이 걸리고 만다.
'사무실로 가야 하는데 지체를 해야하나?' 잠시 망설이다 들어선다. 입구 옆 프랭카드에는 주인장의 사진과 프로필이 빼곡히 박혀있다. 나는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내건 업소를 다소 신뢰하는 편이긴 하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이미지로만 승부하는 세태에 대한 반동심리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QR체크 어디서 하면 되죠?"
"제게 보여주시면 돼요"
알바인듯한 종업원에게 보여준다.
"어 이거 아닌데....접종 하신거죠?"
"네, 근데 인증은 안해놨는데.... 그냥 찍는 건 없나요?"
"없어요"
카운터 앞에서 한참을 스마트폰과 씨름한다. 오늘따라 스마트폰은 느려터진 것만 같고 앱은 휴대폰 인증, 계좌 확인 요구하는 것이 많다. 우여곡절 끝에 인증 받은 QR코드를 종업원 눈 앞에 들이민다.
"아 네. 됐어요"
"여긴 접종 완결한 손님만 받나 봅니다. 그럼 불편한 분들도 꽤 계실텐데...."
"네. 저희는 그래요. 사장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기 보다 힘든 과정을 거쳐 자리를 잡는다.

'대체 어떤 커피길래? 무슨 배짱일까?'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내가 무슨 평가를 할 수 있을까만 은근한 기대를 하게 된다.
커피는 신맛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향도 괜찮은 편이다. 그냥 좋은 커피라고 (혹은 그럴 것이다라고) 판정을 내리고 음미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런 보상심리가 있다. 기대한 게 없었다면, 아무런 과정없이 들어선 카페라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을 지 모른다.
무난하게 혹은 거침없이 오른 정상에서 등반의 기쁨을 만끽하는 산악인은 드물지 않을까.

세상이 흉흉하다. 이미 실망할 대로 실망하고 바닥이 드러날 대로 드러난 대선 후보는 어느새 뒷전이다. 이제는 그 후보 부인의 과거와 현재가 화제가 되고 연일 구설수에 오른다. 부창부수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일, 내 아내도 아닌데 자존심이 구겨진다. 그런데 명확하게 짚고 싶은 게 있다. 이미 국민의 신망과 형평성을 잃을대로 잃은 정치인과 기자들이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엄한 데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자. 한 여자의 어두운 과거를 들춰서 망신을 주자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영부인의 자질을 검증하자는 것도 아니다.
간단하다. 있는 그대로 내 보이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그 부인이 무식하고 뻔뻔하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는 것인지, 편협한 이기심과 정의감, 가짜와 위법으로 이룬 결과라도 성공하고 출세하면 무죄가 되는 세상을 바라는 지 국민에게 당당히 물으라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고루한 나는 어두운 과거와 비정상적인 과정조차도 용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
왜 권력을 가진 자들,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의 잣대는 이다지도 고무줄이고 제멋대로인가.
선거철만 되면 가라앉은 '지역 감정'으로 흙탕물을 일으키고, 거짓과 과장 왜곡으로 없던 죄도 만들고 먼지도 쓰레기더미라고 손가락질하게 만들던 자들이 그들 아닌가.
그들의 오락가락하는 처신과 비루한 변명이 구역질 나고 지긋지긋하다.

물론 나라가 망해도 고향따라 찍겠다는 일부 국민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기본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콩나물 국밥에는 콩나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쌀 포대를 내놓고, 자신의 얼굴을 내 거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당장의 매상보다 원칙을 고수하는 고집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다.

보다 높은 곳을 올라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본에 충실해라. 눈 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가치에 충실해라. 그리고 모든 것을 내 보이고 평가받아라.

국민을 우습게 보지마라. 숨어있는 1인치로 명품을 알아보고, 미소한 차이에도 먼 길을 자초하는 사람들이다.
기대가 클수록 후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면 당당하게 손님을 가려서 받을 정도의 원칙과 실력은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숨기려 들지 말고, 작당해서 주물럭거리지 말고 주방까지 오픈해라. 무엇으로 어떻게 해서 만든 물건인지 보고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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